쓴맛 / 천양희

2023. 2. 16. 08:17좋은시

 

쓴맛 / 천양희

 

쑥부쟁이와 구절초와 벌개미취가 잘 구별되지 않고

나팔꽃과 메꽃이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은사시나무와 자작나무가 잘 구별되지 않고

미모사와 신경초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안개와 는개가 잘 구별되지 않고

이슬비와 가랑비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왜가리와 두루미가 잘 구별되지 않고

개와 늑대가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적당히 사는 것과 대충 사는 것이 잘 구별되지 않고

잡념 없는 사람과 잡음 없는 사람이 잘 구별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

평생을 바라 본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왜 그럴까

구별 없는 하늘에 물었습니다

 

구별되지 않는 것은 쓴맛의 깊이를 모른다는 것이지

 

빗방울 하나가 내 이마에

대답처럼 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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