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은수원사시나무

2023. 4. 9. 11:04자작글/산문

 

녹색의 그 암울했던 시절에 내가 삼년 동안 머물렀었던 강원도 원주땅엔 4월이 되면 바람이 유난히 세차게 불어댔으며 8월이면 연병장 주변에 서있었던 은수원사시나무가 그 특유의 은빛잎새를 바람에 나부끼며 그렇게 서있었던 것 같다. 내가 속해있었던 부대는 영내 철조망 밖으로 멀리 치악산이 바라다 보이고 가깝게는 자유를 상징하는 네마리의 학이 다리끝 양쪽 작은 기둥의 끝에 아름다운 비상을 하려는 듯 두날개를 활짝피고 앉아있는 태장으로 가는 다리인 학다리 바로 옆에 있었다

 

입대하자 마자 고무신을 꺼꾸로 신고 달아나 버린 첫사랑 아이에 대한 일말의 복수를 꿈꾸고 있던 시절,,, 제대를 얼마 남기지 않았을 그 황금같이 빛나던 시절에 내무반 밖으로만 나서면 내 작은몸을 날려버릴 듯 세차게 불어대던 그 바람을 지금도 잊을수가 없다. 착시현상에서 그렇게 느껴졌었는지는 몰라도 하얗게 펼쳐져 있었던 연병장을 가로지르며 마치 한바탕 내속을 뒤집어 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불어제끼던 그 속절없었던 바람은 정말 약속하기 짝이 없었던 것 같다,

 

내 제대날짜의 달과 같았던 제목을 가지고 있었던 한수산의 '4월의끝' 이란 소설책은 늘 나의 손에 들려있었으며 나는 잘 때든 일할 때든 외출할 때든 언제든 그 책을 손에서 떼어본 적이 없었다. 신주단지 모시듯 너무 만지작 거려 손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는 낡은 책이긴 하였으나 그 책은 세상과 고립되어 있던 나를 연결시켜주웠던 끈이였으며 유일한 희망의 바이블과 같은 소중한 책이기도 했던 듯 싶다.

 

아무튼 그렇게 내 청춘이 유린당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던 군대시절 내가 속해 있었던 영내 연병장 주변 녹지공간에는 은수원 사시나무라고 불리우는 나무가 유난히도 많았다 그것은 내가 근무하던 제1군 야전사령부에 1군사령관님이셨던 정승화대장이 사령관으로 부임하시자마자 제 1야전군에 속하는 모든 부대 영내에 그분이 제일 좋아한다는 나무인 은수원 사시나무로 조경을 바꾸게 지시하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대장님이신 4성장군 그것도 제1야전군 사령부의 사령관인 그분의 말은 하나님의 말과 동격으로 받아들여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절 이였므로 사령관님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강원도의 제1야전군에 속하는 모든 부대 영내엔 녹지공간에 심어져 있던 나무들을 뽑아내고 여름이면 은빛으로 아름답게 반짝이곤 하던 은사시나무가 병사들의 힘든 사역에 힘입어 빠르게 심어 졌던 것 같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짜증스러운 작업이였기에 나무를 심을 땐 그나무의 가치를 전혀 몰랐었는데 그 다음해 여름에야 비로서 은수원사시나무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었다. 투명하고 강렬한 여름햇살에 빛나고 있던 그 은빛 잎새들의 반짝거림은 젊음을 잠시 저당잡히고 외롭게 살아야만 했던 군바리라 불려졌었던 우리들의 암울했었던 가슴을 유혹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나무였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길을 가다가 정원의 한 모퉁이에서 자라고 있는 그 나무를 만나기라도 하면 그동안 너무도 많은 세월이 나와 함께 흘러버려 그때만큼의 황홀한 느낌은 아니긴 하지만 가슴 한편이 시려져옴을 속일수는 없는 것 같다.

 

아무튼 4월에 속절도 없이 불어대던 먼지바람만큼이나 4월부터시작하여 8월이면 그 속절없었던 하늘을 가득 채우며 은빛으로 빛나며 흔들거리던 은사시나무 잎새의 그 빛나는 유혹은 녹색으로 감추워 졌었던 내 청춘의 외롭던 시절의 가슴속에서 숱한 그리움을 솟아나게 만들었던 그런 마법을 가진 나무였던 것 같기도 하다. 우연히 은수원 사시나무에 대한 글을 읽다가 문득 그때의 일들이 머리 속에 떠올라 서랍 속에서 오래된 일기장을 꺼내 읽어보는 그런 아련한 심정으로 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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