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장에게

2023. 3. 25. 15:29좋은글

 

196516. 정오경.

눈이 멎지 않고 내리고 있어. 눈 속을 헤매고 싶어.

너는 무얼 하니?

모든 일에 구토를 느껴. 단지 의외로 태양병(太陽炳)의 번역이 나를

몰두시키고 있어.

이런 내용, 그리고 이런 느낌이란다.

태양병균-비정상적인 강한 열 속에서만 생존하는 병균.

나는 토오라는 표범과 사는 마래(馬來)여자 마라와 만났다.

토오는 나를 미워한다.

나는 마라 몰래 토오에게 구하기 힘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직 따스한

암소고기를 먹인다.

다시 야생(野生)으로 돌아가 길들지 말라고.

갈색 피부의 마라-이 여자는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이 여자를 소유하고 있기는 하나-

-"토오를 내쫑아" 마라-"나는 토오가 없으면 잠이 안와요."

나는 토오를 미워한다. 토오는 마라의 애정의 일부를 삣고 있다.

우리는 대륙의 절반을 뒤덮고 있는 열파(熱波)의 한가운데 있는데 춥다.

흰 여자가 흰 남자를 사랑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갈색 남자가 갈색여자를 사랑할 때는?

내 심장은 전쟁을 원하고 있다. 나는 마를 사랑한다.

마라는 일어섰다. 나체로, 갈색으로 사랑하면서.

나는 태양병이 무섭다.

그리고 우리의 피는 소리지른다.

호수 한가운데서 나는 세게를 향하여 소리질렀다. "마라!"

마라, 우리의 사랑은 안 죽어.

태양은 나를 죽일 것이다.

갑자기 광적인 생각이 업습해 온다. 죽음이 구제(救濟)를 갖다 줄는지도 모른다는.

그러나 숲의 화재는 광기다. 사랑하는 불, 사랑하는 숲이여, 너는 죽어야 한다.

나는 마라를 고통 없이 사랑할 수 있으리라.

나는 한계(限界)위에 서 있다. , 마라.

진항 향내 나는 H. 노바크의 이 열()같은 표현 속에 나는 서늘함을

느끼고 있다.

 

전혜린

 

추신

전혜린이 죽기 나흘전의 편지입니다. 그러나 부쳐지지 않고 일종의 신비스런 유언같이 남았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