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경기도(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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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암리 선사시대유적 - 여주시 - 경기도
이 흔암리 유적은 전후 수백 년간 존속한 청동기시대 전기의 한강변의 농경민 취락지로서 한때 적어도 10채 내외의 집이 있었던 것으로 믿어진다. 이들의 경작지는 외국에서의 경우로 미뤄볼 때, 지맥과 지맥 사이의 조그마한 골짜기로 추측된다.쌀·보리·수수·조 등 여러 가지 곡식의 발견은 청동기시대 전기에 한강유역에서 쌀이 재배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벼의 전래경로가 화남(華南)→산둥반도(山東半島)→한국 중서부라는 종래 일부 학자들의 학설의 타당성을 증언하는 결과가 되었다.
2023.02.03 -
은행나무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신륵사의 은행나무는 고려 말의 고승 혜근(惠勤, 1320 ~ 1376)이 입적하기 전 꽂아 놓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수령은 600년 나무 높이는 22m 나무둘레는 3.1m 이다.
2023.02.02 -
삼층석탑 (三層石塔)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천송동의 신륵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으로 석탑 양식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층전탑 부근 강변 암반에 세워진 평면 방형의 3층 석탑이다. 넓은 1매 지대석 위에 단층의 기단이 올려지고 그 위에 탑신석과 지붕돌인 옥개석이 놓여진 형태이다. 1층 탑신은 2층에 비해 3배 정도 높으며 3층 탑신석은 소실되고 상륜부도 모두 결실되었다. 〈신륵사동대탑수리비〉에 의하면 고려 말기의 명승인 나옹 혜근이 신륵사에서 입적하였는데 장례를 치르고 화장이 이루어졌던 곳에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삼층석탑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2023.02.02 -
강월헌(江月軒)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여주 신륵사 강월헌(江月軒)은 6각형의 정자로 남한강변에 가파른 바위 위에 세워져 있다. 주변 경치가 뛰어나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현재 위치는 신륵사에서 입적한 고려 말의 고승 혜근의 다비 장소였는데, 그의 문도들이 정자를 세우고 혜근 생전의 당호인 강월헌(江月軒)이라고 이름 붙였다.
2023.02.02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2023.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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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산신륵사 일주문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일주문(一柱門)은 주로 다포계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기둥이 한 줄로 되어 있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네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일반적인 가옥 형태와는 달리 일직선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사찰에 들어가는 첫 번째 문을 독특한 양식으로 세운 것은 일심을 상징하는 것이다. 신성한 가람에 들어서기 전에 세속의 번뇌를 불법의 청량수로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2023.02.02 -
대장각기비 (大藏閣記碑)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신륵사에 세워져 있는 비로,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던 대장각(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고 있다.길쭉한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운 후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몸 양 옆에 돌기둥을 세워 비몸을 단단히 지탱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비몸 양 옆에 돌기둥을 세우는 형식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보이는 현상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권주(權鑄 )의 글씨로 새긴 비문은 비몸이 크게 파손되어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다. 비문의 뒷면에는 불경(경률론)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우왕 9년(1383)이다. 거북 모양의 비받침,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머리가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각형 ..
2023.02.02 -
극락보전 (極樂寶殿)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극락보전’은 불교의 여러 보살과 부처 중에서 서쪽의 극락세계의 아미타부처님을 모신 불전으로 신륵사의 중심 불전이다. 다른 이름으로는 무량수전, 보광전, 아미타전 등이 있다. 이후 고려 말 나옹 선사 혜근스님이 1376년에 이곳에서 돌아가신 후 왕실의 후원을 받아 크게 다시 지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는 세종대왕의 능인 영릉(英陵)이 인근으로 옮겨지면서 왕릉을 수호하고 필요한 물건을 준비하는 능침사찰이 되어 1472년에 다시 크게 수리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크게 수리가 이뤄지면서 1678년에 지금의 극락보전이 다시 세워졌다. 극락보전은 이후 1797년부터 1800년까지 다시 수리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모습을 보면 평지에 길게 다듬은 화강암을 3단으로 쌓아 기단을 만들었고, 주춧돌은 자연석..
2023.02.02 -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 현판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대장각기비(大藏閣記碑)는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던 대장각(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고 있다.
2023.02.02 -
대장각기비 (大藏閣記碑)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신륵사에 세워져 있는 비로, 극락보전 서쪽 언덕에 있었던 대장각(불경을 만들어 보관하던 곳)의 조성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을 적고 있다. 길쭉한 사각형의 바닥돌 위에 받침돌을 놓고, 그 위로 비몸을 세운 후 지붕돌을 얹은 모습으로, 비몸 양 옆에 돌기둥을 세워 비몸을 단단히 지탱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듯 비몸 양 옆에 돌기둥을 세우는 형식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보이는 현상으로 주목되는 부분이다. 권주(權鑄 )의 글씨로 새긴 비문은 비몸이 크게 파손되어 전체의 내용을 파악할 수는 없다. 비문의 뒷면에는 불경(경률론)을 만들고 비석을 세우는데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열거하고 있다. 비를 세운 시기는 고려 우왕 9년(1383)이다. 거북 모양의 비받침, 용의 머리가 새겨진 비머리가 고려 후기로 오면서 사각형 ..
2023.02.02 -
다층전탑 (多層塼塔)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에 위치하고 있는 신륵사에는 아래로 한강이 굽어보이고 강 건너 멀리 평야를 마주하고 있는 경치좋은 바위 위에 이 전탑이 세워져 있다. 전탑(塼塔)이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탑을 이르며,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와 경상북도 안동지역에서 몇 기가 남아 있다. 탑은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하고, 다시 3단의 계단을 쌓은 후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올렸다. 기단과 계단은 화강암으로 만들었으며, 탑신부는 흙벽돌로 6층까지 쌓아 올렸는데, 그 위에 다시 몸돌 하나를 올려놓고 있어 7층같아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구조이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전탑과 달리 몸돌에 비하여 지붕돌이 매우 얇아 전체가 주는 인상이 사뭇 독특하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3층이 2단, 4층 이상은 1단이..
2023.02.02 -
삼층석탑 (寺三層石塔)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에 위치하고 있는 신륵사에 서있는 단층 기단을 갖춘 평면 방형의 3층 석탑이다. 기단은 1매의 석재로 조성했는데, 각 면에는 양 우주와 탱주를 모각했다. 갑석 역시 1매의 석재로 놓았는데, 각 면 3구씩 그리고 모서리에 1구씩 모두 복엽 16판의 복련을 표현하였다. 중앙에는 낮고 높은 각형 2단의 받침을 만들어 탑신부를 놓았다. 탑신석과 옥개석(屋蓋石; 석탑이나 석등 따위의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은 각각 1석으로 조성되었다. 매 층 탑신석에는 양 우주를 모각했는데, 1층 탑신은 2층에 비해 3배 정도 높게 조성했다. 현재 3층 탑신석은 결실되었다. 옥개석은 3층 모두 남아 있다. 낙수면의 길이가 짧고 경사가 급해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하면에는 1·2층은 각형 3단, 3..
2023.02.02 -
다층석탑(多層石塔)2 - 신륵사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에 위치하고 있는 신륵사 극락보전 앞에 있는 탑으로, 기단(基壇)을 2단으로 마련한 후, 그 위로 여러 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모습이다.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의 세부적인 조형방법은 전혀 달라서, 기단에서부터 탑신부까지 전부 한 장씩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바닥돌 윗면에는 연꽃을 돌려 새겼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에 새겨진 기둥조각은 형식적이나, 특이하게도 물결무늬를 돋을새김해 두어 눈길을 끈다. 아래층 기단의 맨윗돌을 두껍게 얹어놓아 탑의 안정감을 높이고 있으며, 위층 기단의 모서리에 꽃 모양을 새긴 기둥을 두고 각 면마다 용무늬를 깊이 판 모습은 능숙한 석공의 솜씨를 드러낸다. 탑신부의 각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얇은 한 단이며..
2023.02.02 -
지붕 - 남한산성 - 광주 - 경기도 2023.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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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 남한산성 - 광주 - 경기도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 815-1에 위치하고 있는 남한산성의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쌓는 대(臺)를 말한다.수어장대는 산성 안에서 최고봉인 일장산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서 성 내부와 인근 주변까지 바라볼 수 있다.이곳은 병자호란때 인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청나라 태종의 군대와 45일간 대항하여 싸운 곳이기도 하다. 처음에는 1층 누각으로 짓고 서장대라 불렀으나, 영조 27년에 이기진이 왕의 명령으로 서장대 위에 2층 누각을 지었다.
2023.01.30 -
재실 - 세종대왕릉(영릉) - 여주시 - 경기도 20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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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품 - 세종대왕릉(영릉) - 여주시 - 경기도 2023.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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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복방 - 세종대왕릉(영릉) - 여주시 - 경기도
수복방은 조선시대에 종묘, 왕릉 등을 관리하거나 제물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지내던 곳이다. 이곳은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에 위치한 영릉(세종대왕릉)의 수복방이다.
2023.01.24 -
왕릉 - 세종대왕릉(영릉)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에 위치하고 있는 영릉(세종대왕릉)은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성종에 의해 신숙주와 정척이 만든 오례를 중심으로 조선의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 등을 규정해놓은 책인 “국조오례의”를 따랐다. 봉분의 하단을 감싸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설치되었으며, 봉분 내부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 형식으로 되어 있다.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2023.01.24 -
영릉(英陵) / 세종대왕릉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에 위치하고 있는 영릉(英陵)은 조선조 제4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합장릉이다. 조선 왕릉 중 최초로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합장한 능이자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는 능으로, 무덤 배치는 성종에 의해 신숙주와 정척이 만든 오례를 중심으로 조선의 기본적인 예법과 절차 등을 규정해놓은 책인 “국조오례의”를 따랐다. 봉분의 하단을 감싸는 병풍석이 없고 난간석만 설치되었으며, 봉분 내부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 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 형식으로 되어 있다. 봉분 둘레에 돌난간을 둘렀으며 12개의 석주에는 12간지를 문자로 새겨놓았다.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했다.
2023.01.24 -
정자각(丁字閣) - 세종대왕릉 - 여주시 - 경기도
조선 왕릉의 정자각은 능에서 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중심 건물로 그 모양이 ‘丁’자와 같아 ‘정자각(丁字閣)’이라고 불렀다. 정자각은 봉분 아래에 있으며, 정자각 앞으로는 박석을 깐 향로와 어로가 있고, 향어로 맨 앞에는 홍살문이 놓인다. 정자각 좌우로는 수라간과 수복방이 대칭으로 놓여 정자각 제례에 필요한 간단한 준비를 할 수 있다. 물론 본격적인 준비는 홍살문 밖에 있는 재실에서 이루어진다. 조선왕릉 정자각의 연원은 고려시대에서 찾을 수 있으나 그 이전의 정자각 형태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사진은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50에 위치한 세종대왕릉(영릉)에 있는 정자각이다. 참고로 세종대왕과 소헌황후가 묻혀있는 이 영릉(세종대왕릉)은 조선 역사상 최초의 합장릉이다.
2023.01.24 -
왕릉 - 세종대왕릉(영릉)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영릉로 269-10에 위치하고 있는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과 왕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
2023.01.24 -
영릉(세종대왕릉) - 여주시 - 경기도
영릉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과 비 소헌왕후의 합장릉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한 봉우리에 다른 방을 갖춘 합장릉이며, 무덤배치는 국조오례의에 따라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 왕릉 배치의 기본이 되었다. 1469년(예종1) 여주로 천장하면서 세조의 유명(遺命)에 따라 병풍석을 두르지 않고 난간석만 설치하였으며, 봉분 안에는 석실이 아니라 회격(灰隔:관을 구덩이 속에 내려놓고, 그 사이를 석회로 메워서 다짐)하고, 혼유석 2좌를 마련하여 합장릉임을 표시하였다. 또한 기존의 왕릉에는 난간석에 십이지신상을 조각하여 방위를 표시하였는데, 영릉은 이를 간소화하여 십이지를 문자로 표현하였다. 입지는 풍수사상에 따라 주산을 뒤로 하고 산의 중허리에 봉분을 조영하였으며, 좌우측에는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는 멀리 ..
2023.01.24 -
명성왕후생가 - 능현동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에 위치하고 있는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의 비 명성황후(1851∼1895)가 태어나서 8살 때까지 살던 집이다. 명성황후는 민치록의 딸로 철종 2년(1851)에 태어나 16살에 고종의 왕비가 되었다.그 후 정치에 참여하여 개화정책을 주도해 나갔으나, 고종 32년(1895) 을미사변 때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었다. 능은 청량리에 있었다가 1919년 고종황제가 세상을 떠나자 홍릉으로 함께 합장되었다.명성황후 생가는 숙종 13년(1687)에 처음 지어진 집으로, 그 당시 건물로는 안채만이 지금까지 남아 보존되고 있다.1996년에 안채는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함께 지어져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명성황후 생가는 조선 중기 살림집의 특징..
2023.01.24 -
신륵사(神勒寺) - 여주시 - 경기도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 에 위치하고 있는 신륵사(神勒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절이름을 ‘신륵(神勒)’이라고 한 데는 미륵 또는 왕사 나옹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전설에 의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려 고종 때 건너편 마을에 나타난 용마가 걷잡을 수 없이 사나웠으므로 사람들이 잡을 수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고삐를 잡으니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제압하였다고 하여 절이름을 신륵사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절은 고려 때부터 벽절(甓寺)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경내의 동대(東臺)위에 다층전탑이 있는데, 이 탑 전체를 벽돌로 쌓아 올린 데서 유래한 것이다.그러나 이 절이..
2023.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