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양업 토마스 신부님 생가지 - 새터성지 - 청양군 - 충남

2023. 9. 7. 06:06가톨릭

 

다락골의 입구인 이곳을 샛터라 부르는데, 이곳은 한국인으로서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와 아버지 최경환(프란치스 코, 1805-1839) 성인이 태어난 곳이다.

 

최경환 성인의 아버지는 최인주이다. 그는 12살이 되던 해에 서울에서 홀 어머니 경주 이씨를 모시고 살다가 1791년 진산사태로 시작된 신해 박해를 피해 이곳 샛터로 이주, 정착을 하게 되었다. 최인주는 성장하여 결혼을 해 슬하에 3형제를 두게 된다. 그 중 막내 아들이 198456일 시성된 최경환(프란치스코)이며, 최경환의 여섯 자녀 중, 장남이 최양업(토마스) 신부이다. 이 때부터 이곳에서 700m 쯤 떨어진 다락골에 천주교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하여 1866년 병인박해 때까지 교우촌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된다.

 

새터 성지는 최경환 프란치스코 성인과 그의 아들 최양업 토마스 사제 부자가 태어난 곳이다.

 

현재 다락골 성지는 크게 새터와 줄무덤 두 부분으로 나뉜다. 새터와 다락골 일대는 박해시대 교우들이 삶을 영위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최경환 성인이 태어나 이성례(마리아)와 결혼하였고,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여러 형제들이 탄생하고 성장하였다.

 

사실 다락골 새터와 줄무덤을 분리하여 검토하기는 쉽지 않으나, 여러 기록을 보면 다락골이 처음에 주목받은 곳은 새터였다. 최양업 신부가 탄 생한 새터가 먼저 답사의 대상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무명 순교자 줄무덤도 주목을 받게 되었다. 1827년경 그 집안이 좀 더 나은 신앙생활을 위 해 다른 곳으로 떠날 때까지 다락골은 미래의 성인과 사제, 그리고 순교자들을 길러낸 터전이었다.

 

그 집안이 떠난 후에도 교우촌으로 계속 남아 있던 다락골은 병인박해(1866) 이후 소멸되었다. 포졸들에 의해 발각된 교우촌은 전부 동네를 불 질렀다고 전하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소멸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현재 성지에서 고증 작업과 개발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