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티성지 - 부여

2023. 10. 5. 06:26가톨릭

 

삽고개라고도 불리는 삽티(揷峙)는 박해시대의 교우촌으로 부여군 홍산면 상천리와 내산면 금지리 사이의 경계에 있는 고개 이름이다. 부여군과 보령시의 경계를 이루는 월명산과 천보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남쪽과 북쪽 계곡에는 조선시대에 교우들이 숨어 살면서 삽고개를 사이에 두고 연통하며 신앙생활을 하였다. 삽고개로부터 남쪽으로 흘러내린 계곡에도 교우들이 숨어 살았는데 이곳에 삽티 교우촌이 있었다.

 

이곳 삽티 계곡에는 1790년대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하여 숨어 살았다.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선각자 이존창 알로이시오 공사가 선생이 고향 예산 여사울에서 배척 받은 후 홍산 지방으로 피신하였습니다. 이존창 선생의 비밀 선교활동에 의해 홍산지방에서 천주교 신앙을 지니게 된 교우들이 숨어 살기 시작한 곳이 이곳 삽티 계곡이다.

 

그 후 1850년대에 충북 괴산 연풍에서 배척 받은 황석두 루카 성인은 가족들을 이곳 삽티에 이주시켰다. 황석두 성인의 양자 황천일 요한과 조카 황기원 안드레아가 삽티 교우천에 살았다. 황석두 성인은 인근 30여리 상거의 산막골에 선교 거점을 삼은 선교사 페롱(Feron) 신부를 보필하였다. 그리고 황석두 성인은 이곳 삽티를 중심으로 하여 인근 산골 교우촌들을 순회하여 신자들을 지도하였다. 옥산의 부덕리와 내산의 도앙골과 외산의 북두머니, 내대, 거칠, 옥가실 등 산골의 신자들을 지도하였다.

 

병인박해를 당하여 1866330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성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와 함께 순교한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양자 황천일과 조카 황기원이 수습하여 그해 529일에 여기 삽티에 안장하였다. 그 후 1866년 말에 홍산 현()에 체포된 황천일과 황기원은 서울에서 사형 당하여 순교했다. 황석두 성인의 시신을 삽티에 안장한 사실에 대해서 황기원의 딸 황 마르타가 1922년에 다음과 같이 증언하였다.

 

‘(병인년의) 4월 16일(양력 5월 29일)에 나의 백부가 가서 시신을 가져왔다고 합니다. 홍산 사피(즉 삽티)에 묻었습니다. 지금은 자손이 없기 때문에 가더라도 찾지 못합니다.'(시복조사 1922년 재판 34회차 제23조목 황 마르타의 증언–정리번호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