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자카르타의 이야기

2023. 3. 4. 06:03자작글/산문

 

오래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 '화인 글로벌' 이라는 해외법인을 만들고 자재 구매차 스리랑카에서 부터 멀지 않은 인도네시아의 자카르타를 다녀온적이 있었다, 그곳엔 다행히 성공한 몇분의 대학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나는 공항에서부터 특별대접(?)을 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물론 업무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

자카르타엔 한국음식을 팔고 있는 한국식당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아주 크고 고급스럽게 자리하고 있다.그중 고층빌딩 9층에 자리잡고 한국의 음식을 팔고 있는 "서라벌"이란 한국식당과 지역을 설명할수는 없지만 자카르타 다운타운의 빌딩 일층에 넓다랗게 자리잡고 통로의 여유공간마다 독특하게 한국의 장독으로 인테리어를 하고 영업을 하는 "미락"이라는 한국식당도 있었다,

 

열대지방이기에 신선한 음식재료를 구할수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음식맛에 있어서도 국내와 별차이가 없을만큼 맛깔스러웠고 더더욱 특히한 일은 종업원들의 숫자가 한국에 비해 두세배는 많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아마도 후진국가이기에 인건비도 싸고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을 채용하여 써비스를 하고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식당 입구부터 시작하여 음식을 먹던 방문앞 심지어 화장실앞에까지 종업원들이 나열하여 부담스러울 정도로 써비스를 하였던거 같다.

 

그보다 더 아이러니칼 한 일은 인도네시아는 동남아국가 중 유일무일한 무스림(회교)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밤의문화가 국내만큼 절 발달되어 있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물론 밤문화 특히 가무에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던 한국교포들이 이민을 와서 만들어 낸 문화이기도 하기에 자카르타에서 유명한 업소들의 주인은 대부분 한국인이였기에 여행을 오든 나처럼 비지니스차 출장을 오든 국내와 똑같은 방식 아니 그보다 더 특별한(?)한 방식의 진화된 밤의 문화를 부담없이 즐길수 있었던거 같다.

 

자카르타에서도 비지니스의 꽃이라 할수 있는 소위 '룸싸롱'이란 술집이 성업을 이루고 있었는데 내가 가본 곳은 '일번지'라는 룸싸롱이다. 이 룸 싸롱은 자카르타에서도 내부 인테리어이며 종업원들의 수준이 상위 1%에 속하는 최고급 술집이였다. 실내 인테리어이며 팔고 있는 술은 국내와도 비슷했는데 특이한 점은 접대부 아가씨들을 자신이 직접 선택할수 있다는 것이였다. 

 

성공한 선배들답게 술집문앞에서 부터 V.I.P대접을 받으며 우리들은 대형 룸으로 안내되었다. 내 생전 그렇게 큰 방은 처음이였다. 의자에 앉아 선배님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 받고 있을때 마담으로 보이는 여자가 방안으로 들어와서 선배와 알아들을수도 없는 인도네시아어로 몇마디 나누다 싶더니 몇분 후 20명도 넘은 미모의(?)아가씨들이 우리들 방으로 들어와 탁자 앞에 나란히 도열을 하는 것이였다,

 

키큰 여자,키작은 여자, 마른 여자, 통통한 여자, 까만 여자, 하얀 여자, 긴머리 여자, 짧은 여자,,,등등 각자 다른 모습이긴 하나 알수없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있던 그 많은 여자들은 마치 인종시장에 끌려나온 '뿌리'라는 드라마의 한장면이 연상될 정도로 충격 그자체로 다가왔던 거 같다.

 

'어이 김사장,,,마음에 드는 아가씨 있으면 한번 선택해봐,,,막내니까 우선선택권을 부여하지,,,'

 

생전 처음으로 보았던 그 놀라운 광경에 놀라 심장이 마구뛰던 나는 차마 선배의 제의처럼 고를수가 없었다. 내가 그렇게 아가씨를 선택을 못하고 쩔쩔매며 망설이고 있자 박장대소를 하며 선배는 그 아가씨들에게 나이를 물어보더니 그중 나이가 가장 어린 사람을 나의 파트너로 정해주는 것이였다.

 

그렇게 하여 나의 파트너가 된 아가씨는 인형같이 아주 작고 얼굴도 예쁜 더더욱 영어회화도 유창한 '에끼' 라는 아가씨들중 가장 나이가 어린친구였다. 영국산 헤네시 술병이 이리저리 날아 다니고 다들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취기가 오를 무렵 처음으로 그 자리를 주선한 선배님이 선곡을 해  어께동무를 하며 함께 합창을 했던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부른 '와이 미(Why me)' 라는 노래를 시작으로 춤과 노래의 한판 향연이 벌어졌다.또한번 놀라운 일은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한국노래를 잘 부르는 것이였다,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 그밖에 나도 잘 모르는 한국 가요을 불러대는 것이였다. 한국 가요를 유창하게 부르는 모습을 보며 머랄까 뿌듯한 생각도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먹고 살기 위해 외국가요도 열심히 배웠겠구나 하는 인간적 서글픔도 밀려들었던 거 같다. 아무튼 나의 파트너였던 에끼는 한국 가요 몇곡과 그리고 세린 디온이 불렀던 "파워 어브 러브(Power of love)" 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노래를 얼마나 잘 부르던지 우리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되고 있다.

지금도 가끔 셀린 디온의 '파워 어브 러브(Power of love)' 라는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그 친구의 예쁜 모습이 떠오르곤 한다. 며칠후 오래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나에게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던 선배님이 업무차 잠시 귀국을 한다고 한다. 그때 살짝 그 친구의 소식을 물어봐야 겠다, 세월이 많이도 흘렀으니까 어쩌면 결혼도 하고 그랬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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