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08-09 07:43:59 자폐의 세상을 평정하다

2023. 3. 31. 19:55자작글/일기

 

젯밤은 술속에 빠져 내 자폐의 세상을 평정한거 같다. 비는 속절도 없이 어둠사이를 뚫고 사정없이 쏟아지고 그 빗줄기 속으로 나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그렇게 술병을 자빠트렸다.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기도 하기에 엇저녁과 같은 술자리는 년중행사와 같이 일어나는 희귀한 일이기도 하다.

 

오후 5시쯤 찾아온 친구와 저녁을 먹으면서 한두잔 마시기 시작한 나는 7잔째부터 정신을 잃었나 보다. 그 이후로는 생각이 나질 않는다.어떻게 집에 왔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눈을 뜨니 나는 나의 작은방에 누워있고 시계를 보니 시간은 하루가 지나버리고 만 아침 7시였다. 엇저녁 11시 이후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일시적 기억상실증에 난감하기 짝이 없다

 

숙취에 의하여 밀려드는 두통을 커피한잔으로 달래 보지만 쉽게 가라 앉지 않는 것 같다. 타이래놀 두알을 소화제와 함께 먹고 이렇게 버티면서 오늘의 일기를 쓰고 있다 생각해 보면 술을 마신 세상은 용기와 희망이 넘실거리는 세상인 것 같다. 하고싶은말도 실컷 할수 있는 대화의 장도 그곳엔 분명 존재 하는 것 같다

 

술을 마셨다 하여 혹은 만취가 되어 정신을 잃었다 하여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그러나 사람의 마음속에 깊숙히 숨어있었던 하고 싶었던 말을 털어놓으므로써 후련해지는 작은 치료효과는 볼수 있는것 같다. 내성적이거나 속을 잘 보이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에게는 취기란 아주 훌륭한 치료제다. 그렇게 일시적 취기에 의한 치료의 효과를 보아서인지는 몰라도 내 머리속에서 나를 힘들게 하던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자취를 감춰버린거 같다. 아니 그 정도를 넘어서 허전하기까지 하다

 

두잔째의 커피를 머그잔 가득 채워 마셔본다. 생각만으로도 정말 맛이 있을 것만 같은 담배 한가치를 피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긴 하지만 빈 담배갑만 방안에 버려져 있을 뿐이다.몸은 힘들고 담배가게에는 가기 싫고 그런저런 생각과 함께 작은 금단의 현상이 불안하게 내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갑자기 시원한 콩나물이 들어간 해장국을 먹고도 싶어진다.타이래놀에 살짝 중독된 두통은 사라져 버린 것 같지만 약효때문인지는 몰라도 멍한 어지러움을 느껴본다.

 
2005-08-09 07: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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