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옹주홍문 / 백송공원 / 백송 - 추사고택 - 용궁리 - 신암면 - 예산군 - 충남

2025. 7. 18. 20:50국내여행/충청도

 

화순옹주는 영조의 둘째 딸로 어머니는 정빈이씨(靖嬪李氏)이다. 영의정 김흥경(金興慶)의 아들인 월성위 김한신과 결혼하였다. 1758년 남편 김한신이 죽자 화순옹주는 곡기를 끊어 월성위의 뒤를 따르려 하였다. 소식을 들은 영조는 화순옹주는 월성위가 죽은 뒤로부터 7일 동안 곡기를 끊었다고 하니, 음식을 권하지 않고 좌시하면 어찌 아비 된 도리라 하겠는가?”라며 4일 뒤 화순옹주 방에 거둥하였다.

 

화순옹주는 영조의 명을 따라 음식을 한입 하다가 토하였고, 이를 본 영조는 한 번 먹은 마음을 돌리지 않으려는 화순옹주의 뜻을 알고 탄식만 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화순옹주는 결국 곡기를 끊은 뒤 14일 만에 사망하였다.

 

화순옹주홍문은 화순옹주(和順翁主)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1783년 정조의 명으로 용궁리 어귀에 세운 열녀문이다. 화순옹주는 예산에 가문의 원찰을 두었던 월성위 김한신(金漢藎)의 처이며, 조선 왕실 내 유일한 열녀로 알려져 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인근에 위치한 예산 용궁리 백송은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써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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