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다 / 김재곤 어설픈 잠결에 푸른 돛대를 꿈꾸다 얼핏 깨어나 창밖을 바라다 보니 원시의 시간속에서 세찬 밤바람은 시린 별빛을 흩으려 검은 바다에 던지고 하늘끝에 걸린 초승달은 나를 비웃기나 하듯 창백하게 웃고 있었다 불을 끄고 어둠속에서 눈을 감은체 문틈으로 귀 기울이니 하얀이를 들어내며 죽일듯 달려들던 파도 부서져버린 자폐의 쉰 소리만 밤새도록 들려왔다
나목 / 김재곤 지나온 것들은 모두가 꿈이였는지도 몰라 벌거벗은 채로 기억해야 했었던 것은 명 나의 운명이었어 내 삶은 늘 고단하기만 하여 마른 잎새로 버려질수밖에 없는 아픔이란 걸 예감하고 있었으나 비켜나지 않았던 것은 비켜서지 않았던 것은 소름처럼 돋아오르는 새순의 그 황홀한 간지러움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지
불후의 명작 / 김재곤 그대가 잠들어있는 이른 새벽에 홀로 일어나 살며시 밝혀놓은 촛불 아래에서 나는 시를 쓴다 밤새 불면에 시달리다가 구겨진 체 방바닥에 내던져진 가련한 의식들을 한데 모아 뜬금없이 뜬금없이 불후의 명작이기를 꿈꾸어보며 나는 그렇게 쓸쓸한 언어들을 난도질 하며 무명의 시린시를 쓰고 있다
안부 / 김재곤 항상 머리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그렇게 꿈결처럼 남아는 있습니다 삶이 참 고단하기만 하여 그저 속으로만 그리워 하고 있었나 봅니다 낯선길을 걷다가 풀밭에서 당신의 향기 꼭 닮았을 것 같은 이름없는 들꽃을 바라다 보다가 아,,,문득 속으로 중얼거리며 안부를 물어봅니다 잘살고 있느냐고 잘살고 있느냐고
너를 마시며 / 김재곤 밤새도록 창문밖 어둠은 흐린별 하나 꼬옥 끌어안고 그렇게 숨어있었구나 흐린 너처럼 흐린 나처럼 보이느냐, 지금 여명의 작은빛은 태초의 하늘을 찌르며 서둘러 우리에게 오고있음을 채린아, 지금 밤새 떨다 지쳐버린 마른잎도 포도주빛 아스팔트위에 풀죽은채 누워있다 빙초산 냄새 풍겨나는 지금 새벽은 자유와 고독이 풍성해서 참으로 좋구나 채린아,지금 나는 머그잔 가득 너 닮은 그리움 담아 가슴이 시리도록 마셔본다
낮달 / 김재곤 온밤을 헤메이며 유령처럼 떠돌다 멈춰버린 하늘 조각난 별하나 날이선 파편이 되어 상처난 희망에 칼을 꽂는다 떨리던 청춘은 새벽바람을 타고 기어올라 어느새 살빛 낮달이 되어 허황한 하늘끝에 풀죽은 눈알처럼 박혀있다 핏빛을 잃은 나의 분신이 되어
안부 / 김재곤 항상 머리속에는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그렇게 꿈결처럼 남아는 있습니다 삶이 참 고단하기만 하여 그저 마음으로만 그리워하고 있나봅니다 낯선길을 걷다가풀밭에서 당신의 향기꼭 닮았을 것 같은이름없는 들꽃을 바라보다가 아…문득속으로 중얼거리며 당신의 안부를 물어봅니다 잘 살고있느냐고 잘 살고있느냐고
역마살 / 김재곤 열사의 사우디에서 부뤼헤까지 멈추고 싶었으나 멈추지 못했다 길은 앞에 있었고 되돌아갈수는 없었으므로 무조건 가야만 했다 쿵쿵 거리며 마구 뛰던 심장소리 되돌아보게되던 발자욱소리들이 불안한 공명음이 되어 내 의식을 단단히 조여올때도 나는 살아 있어야 했으므로 시계바퀴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아주 작은 희망으로 숨을 쉬며 꽃잎처럼 날리던 비둘기떼처럼 자유로운 착륙을 꿈꾸었지만 스스로 묶어버린 날개쭉지를 끝끝내 풀지를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가야만 했고 살은 독하고 강했으므로 자해하듯 아프게 고삐를 당겨 또다시 내역마살을 재촉해본다 가자 고독이 춤추는 땅으로
도솔암 / 김재곤 안개만큼 마음 갑갑한날 검은빛 도솔천따라 극락교를 건너 피빛 동백꽃을 밟고 선운사 도솔암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조차 마른 숨을 삼킬때 새벽을 놓친 딱다구리뜬금없이 말라 터진 고목을 쪼아댄다 나였구나 나였구나 고목이 아니라 나였구나
파랑새는 있다 / 김재곤 어둠속에 묻혀있는 로터리 풀죽은 가로등아래 로타리패 일당잡부들이 서성거린다. 영하10도의 꽃시샘추위는 동동거리는 몸짓마져 얼려버리고 외투사이로 황소바람 같은 찬바람이 스며들어가 듯 엷은 옷깃을 자꾸만 여미고 있다. 엇저녁 동네 수퍼에서 외상으로 홧김에 마셔버린 깡소주의 취기는 해장도 하지못해 쓰리기만 한 속을 뒤집어 놓고 있는데 와야할 봉고차는 콧 빼기도 보이지않는다. 오늘마져 공을치면 벌써 일주일 째 차거운 별빛사이로 석달 째 집세가 밀렸다고 아우성치는 집주인 성화에 화가난 쌍심지를 켜고 달려들던 마누라의 무서운 눈빛이 등록금 미납으로 주죽이 들어있는 새끼의 가련한 눈빛이 비수처럼 텅빈 가슴에 꽃힌다. 동녁이 여명으로 빛이 날때까지 낡은 봉고차는 오지 않았다. 수채구멍에 쳐박혀..
문밖의 그대 / 김재곤 밤새 창문 두드린이가 당신이였나요 그것도 모르고 무심하게 잠만 잤나봅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어둠인지 알았어요 가끔 다녀가는 바람인줄만 알았지요 그리 오실꺼라면 기별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찬이슬에 젖지 않았는지 밤바람에 떨지 않았는지 쓸쓸한 발자욱만 남아있는 문밖의 작은 뜰에는 당신이 남기고 간 젖은 향기가 데이지꽃처럼 피어있었네요 맞네 맞네 밤새 창문 두드리며 문밖에 서있던 것은 날마다 오는 짙은 어둠도 어쩌다 부는 바람도 아닌 정녕 봄을 닮았을 바로 당신이였나 봅니다
카푸치노 같은 사랑 / 김재곤 풍성한 우유거품이 아이스크림처럼 떠있는 가푸치노 아침 한끼로도 충분히 때울수 있는 커피가 이세상에 또 있을까 톡 쏘는 계피가루가 없더라도 달콤한 설탕시럽이 없더라도 풍성한 거품이 부티나게 폼나는 카푸치노 같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이부자리 / 김재곤 행여 잠을 설칠까 밤새 풀먹여 곱게 다려 한땀 한땀 바느질로 깔아놓은 이부자리 어머니의 기도인가 어머니의 사랑인가 팔베게 베고 눈감으니 휘이 휘이 한숨소리가 들려온다 숨죽이며 귀기울이니 도닥 도닥 다듬이 소리도 들려온다
레옹모자 같은 사랑 / 김재곤 문밖을 나서기전에 아무런 생각없이 머리에 뒤집어 쓰고 나간 두 귀를 감싸고 있는 가느다란 털실로 짠 네덜란드산 검정빛깔의 레옹모자 두손으로 감싸도 모자라게 추울때 시린 두귀를 감싸주는 레옹모자 같은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노인 / 김재곤 남자가 자다가 일어나 세번씩이나 소변을 본다는 것은 그건 이미 늙어간다는 증거다 아침에 立하지 못하는자 돈도 빌려주지 말라 했거늘 어제밤에도 세번씩이나 화장실을 다녀왔으니 나는 이제 돈빌리기는 다 틀렸다
비오는 날 / 김재곤 찌푸린 하늘에 매달린 기억들이 빗물이 되어 흩어져 내림니다 소리죽여 외우던 이름 차거운 빗방울이 되어 유리창에 맺힙니다 서둘러 창밖을 내다보니 그리움에 지친 추억들도 노란우산이 되어 나팔꽃처럼 피어오름니다 속절도 없이 겨울비가 몹씨 내리던 날에
불면 / 김재곤 어둠은 지루한 시간을 방바닥에 던져 버리고 정적은 숨소리 죽이고 그 위에 눕는다 작게 뛰던 심장은 시계 초침소리를 따라 빠르게 팔닥거린다. 식어버린 의식은 곤두선 세포들을 붙들고 늘어지고 한가닥 두려움 물병에 뿌려논 잉크처럼 순식간에 내 머리속으로 번져간다 불면은 그런 모습으로 지쳐버린 나와 함께 있다
폭풍우같은 사랑 / 김재곤 나무를 뽑아버릴 것 같이 세차게 불어대는 폭풍같은 바람 머리카락을 날리는 미풍도 감미롭기는 하나 나는 열정을 다바쳐 뒤집어질 폭풍우같은 사랑을 하고싶다
소낙비 같은사랑 / 김재곤 한여름 지독한 무더위를 흠뻑 적시며 한바탕 쏟아져 내려오는 소낙비 세상의 더러운 먼지를 닦아내고 무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소낙비 같은 그런 사랑을 하고싶다
풍경 / 김재곤 물안개 휘돌다 멈춰버린 강 허리에 감기고 빈 나룻배 바람에 걸려 휘청거린다. 겁많은 철새 바람소리에 놀라 튕겨 오르자 강물에 드리운 긴 낚시대 파르를 떨며 잔잔한 강물의 물살을 접는다.
그리움 / 김재곤 그대 스치고 지나가버린 바람은 아니였나요 고왔던 미소 입가에 머물고 손끝에 묻어있는 온기는 아직도 여전한데 그대 꿈속은 아니였겠지요 코끝에 남아있는 향기에 취하여 그리움의 물살을 가만히 쥐어봅니다
비가 그치면 / 김재곤 서쪽에서 바람 불어 먹구름 몰고 오더니 초록옷 갈아 입는 언덕위로 단비를 뿌린다 이 고운비 그치고 나면 봄은 더 가까이 오겠지 씀바귀 캐러오는 치맛자락이 그리워 냉이 달래도 함초롬이 고개를 들겠지
숲속의 빈터 / 김재곤 숲속길을 따라 올라가면 자그마한 빈터 새마져 떠나버린 마른 가지엔 빈 바람만 일고 있네 나무 부딛치는 소리 너의 노래가 되어 내 귓가에 맴돌때 내 마음 하얀 바람이 되어 숲속길을 걸어보네
홀씨 / 김재곤 바람 몹시 불던날 길잃은 홀씨 하나 잿빛 하늘을 날아 얼어붙은 땅으로 날아와 작은 떡잎으로 자라나 있네 저 잎새 자라나 꽃이 되면 어디에선가 홀씨같은 내 사랑도 피어나겠지
청보리 / 김재곤 갈대풀흐드러지는 속깊은 계절 마른 강변을 따라 길게 누운 뚝방길 옆 모퉁이밭엔 겨울 청보리가 자라고 있다 추워야만 살수있다는 이유로 메마른 땅속에 숨어살다가 살 에이는 차거운 바람이 불자 반가운듯 살포시 그 초록 살점을 내민다
여행단상 / 김재곤 새로운 곳은 늘 막막하다 . 텅빈 역사앞 광장은 설레임과 불안함이 공존하며 나를 맞이하곤 한다 꿈이였는지는 모르나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에 되돌아 보게되지만 역사엔 그저 낯선 바람만 휭하고 불어댈뿐이다 문득 떠나온곳에 대한 그리움 그 곳은 열차가 달려온 것 만큼이나 까마득하기만 하고 고개를 저어 마음을 달래고 광장 옆 벤치위에 던져놓은 낡은 가방속에 한웅큼 불안함을 구겨 넣으며 가려던 길을 서둘러본다
까치소리 / 김재곤 지난밤에 야속한 봄바람 창문만 흔들어 대더니 아침에 느티나무 가지끝에서 까치가 운다. 오늘은 반가운 님 오시려는지 성급한 마음이 먼저 달음박질쳐 사립문 문고리를 잡는다
기억 / 김재곤 서랍을 정리하다 책사이에 끼어있던 메모지 한장을 무심코 펼쳐본다 누구였지,, 기억조차 나지않는 오래된 시간 뒤로 낯익은 얼굴 하나가 살짝 삐져 나온다 아,,, 가슴안에서 그리움 하나가 파르르 떤다 나는 깜짝 놀래 황급히 서랍문을 닫는다
이별이야기 / 김재곤 초라한 술상위에 끝내지 못한 이야기는 잔밥이 되어 버려지고 유리잔에 따라놓은 비우지 못한 말들은 파문을 일으키며 떨고 있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거였나보다 술잔을 부딛치며 함께 마시다 바닥에 쓰러지고 마는 비어버린 술병같은 단지 그런거였나 보다 술잔에 채워놓은 마지막 인사가 두려워 팽겨쳐 쓰러져버린 빈술병으로 기어들어가 나를 가둔다 여전히 빈 술병들은 바닥에 쓰러지고 있다
수은등 같은 사랑 / 김재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 입구에 혼자서 서있는 수은등처럼 누가 보지 않아도 빛을 내어 길을 밝혀주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