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궁(慶熙宮)

2025. 11. 24. 08:295궁 종묘 왕릉

 

경희궁(慶熙宮)은 조선 15대 광해군 대에 이궁(離宮)으로 창건한 궁으로 원래 이름은 경덕궁(慶德宮)이었다. 원래 이곳은 16대 인조의 아버지 추존 원종(정원군)이 살던 사저였는데, 경덕궁이 지어지면서 도성의 서쪽에 있다고 하여 서궐(西闕)이라 불렸다. 1760(영조 36)에는 원종의 시호(諡號)와 음이 같다 하여 궁의 이름을 경희궁으로 바꾸었다.

 

주요 전각으로는 정문인 흥화문(興化門), 정전인 숭정전(崇政殿), 편전인 자정전(資政殿), 그 밖에 생활공간인 융복전(隆福殿), 회상전(會祥殿) 등이 있었다. 이곳은 인조 대부터 철종 대까지 많은 왕과 왕비가 생활하였는데, 특히 경종, 정조, 헌종이 숭정문(崇政門)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러나 1865(고종 2) 경복궁 중건이 시작되면서 대부분의 전각들이 경복궁 복원에 사용되었고, 일제강점기 때 학교가 지어지면서 일부 남아있던 전각들이 철거되었다. 이후 1987년부터 서울시에서 경희궁 복원사업을 진행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고 서울역사박물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흥화문(興化門)은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원래는 금천교 동쪽, 즉 현재의 구세군 빌딩자리에서 동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일제가 1932년 이토 히로부미를 위한 사당인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흥화문을 떼어갔었다.

 

광복 이후 박문사가 폐지되고 그 자리에는 영빈관에 이어 신라호텔이 들어서면서 그 정문으로 남아있다.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흥화문을 경희궁터로 옮겨 왔는데 원래의 자리에는 이미 구세군빌딩이 세워져 있어서, 현재의 위치에 이전하여 복원하였다.

 

금천교(禁川橋)는 경희궁의 정문인 흥화문을 들어서면 궁내의 전각에 들어서기 전에 흐르던 금천에 놓여진 돌다리다. 난간의 돌짐승들이나 홍예 사이에 새겨진 도깨비 얼굴은 대궐 바깥의 나쁜 기운이 궐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상징성을 띠는 것이다. 1619(광해군 11)에 건립되었던 것을 일제가 매몰시켰지만, 서울시에서는 2001년 발굴을 통하여 발견된 옛 석조물을 바탕으로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숭정전(崇政殿)은 경희궁의 정전으로 국왕이 신하들과 조회를 하거나, 궁중 연회, 사신 접대 등 공식 행사가 행해진 곳이다. 특히 경종, 정조, 헌종 등 세 임금은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숭정전은 경희궁 창건공사 초기인 1618(광해군 10)경에 정면 5, 측면 4칸의 규모로 건립되었다.

 

그러나 일제가 경희궁을 훼손하면서 1926년 건물을 일본인 사찰에 팔았는데, 현재는 동국대학교 정각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 위치의 숭정전은 경희궁지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위치에 발굴된 기단석 등을 이용하여 복원한 것이다. 숭정전 내부 당가에 용상을 설치하였는데, 그 뒤로 곡병과 일월오봉병을 두었다. 우물천정에는 마주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을 새겨두었다.

 

자정전(資政殿)은 경희궁의 편전으로서 국왕이 신하들과 회의를 하거나 경연을 여는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다. 숙종이 승하한 후에는 빈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선왕들의 어진이나 위패를 임시로 보관하기도 하였다. 1617~20(광해군 9~12) 사이에 건립되었으나, 일제가 훼손하였다. 서울시에서는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자리에 <서궐도안>에 현재의 건물을 복원하였다. 자정전 서쪽에는 발굴을 통하여 행랑의 바닥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돌이 발견되었기에 발굴 당시의 모습을 보존하여 복원하였다.

 

태령전(泰寧殿)은 영조의 어진을 보관하던 곳이다.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지정되지는 않았던 건물이었다. 그러나 영조의 어진이 새로 그려지자 1744(영조 20)에 이 곳을 중수하여 어진을 봉안하였고, 영조가 승하한 후에는 혼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흔적조차 거의 남아있지 않던 태령전을 서울시에서는 <서궐도안>에 따라 정면 5, 측면 2칸의 건물로 복원하였다.

 

서암(瑞巖)은 태령전 뒤에 있는 기이한 모양의 바위, 암천(巖泉)으로 불리는 바위 속의 샘이 있어 예로부터 경희궁의 명물이었다. 본래는 왕암(王巖)으로 불리었는데 그 이름으로 인하여 광해군이 이 지역에 경희궁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 1708(숙종34)에 이름을 서암으로 고치고 숙종이 직접 '서암(瑞巖)' 두 글자를 크게 써서 새겨 두게 하였다. 현재 서암을 새겨 두었던 사방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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