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5. 18. 09:19ㆍ국내여행/경상도



분황사 보광전(普光殿)

분황사 보광전(普光殿) 금동약사여래입상(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












분황사모전석탑(芬皇寺模塼石塔)


분황사화쟁국사비부(芬皇寺和諍國師碑趺)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





분황사(芬皇寺)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있는 사찰이다. 선덕여왕(善德女王) 3년(634년)에 낙성된 이래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의 전성기와 함께했던, 1,400년 동안 법등(法燈)을 밝혀 온 유서 깊은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소속으로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써, 현재의 규모는 약사도량(藥師道場)으로써 약사불을 모신 보광전(普光殿)과 석탑, 그리고 요사채의 단촐한 규모일 뿐이지만, 신라 불교를 대표하는 고승인 자장(慈藏)과 원효(元曉,) 등이 주석한 곳으로써 창건 당시의 사찰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분황(芬皇)'은 '향기날 분', '황제 황'자로 향기나는 황제절이란 뜻이다.
보광전내의 ‘분황사 금동약사여래입상(芬皇寺 金銅藥師如來立像)’은 조선 후기의 유일하고 규모가 가장 큰 금동불 입상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가 있다. 이 불상은 17세기 초반의 동조(銅造)불상이라는 점, 규모가 354cm이르는 현존 최대 금동약사불이라는 점, 앞 시기 규범에 따라 입상으로 조성된 정통성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대형 불상이 대부분 소조(塑造, 진흙)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이러한 대규모 금동불상은 매우 희귀한 사례에 속한다.
경내에는 분황사모전석탑(芬皇寺模塼石塔),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분황사화쟁국사비부(芬皇寺和諍國師碑趺)등이 있다.
분황사모전석탑(芬皇寺模塼石塔)은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걸작품으로,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模塼石塔)이다. 원래 9층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탑은 넓직한 1단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착실히 쌓아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벽돌이 아닌 자연석으로 이루어져 있고, 네 모퉁이마다 화강암으로 조각된 사자상이 한 마리씩 앉아있다.
회흑색 안산암을 작게 벽돌모양으로 잘라 쌓아올린 탑신은 거대한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는 현저하게 줄어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1층 몸돌에는 네 면마다 문을 만들고, 그 양쪽에 불교의 법을 수호하는 인왕상(仁王像)을 힘찬 모습으로 조각해 놓았다.
지붕돌은 아래윗면 모두 계단 모양의 층을 이루고 있는데, 3층 지붕돌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며, 그 위로 화강암으로 만든 활짝 핀 연꽃장식이 놓여 있다.
분황사 팔각 석정(石井)은 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도 물이 나와 사용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우물에는 3마리의 호국룡이 살았다. 765년 당나라 사신이 우물 속의 용을 3마리의 물고기로 변신시켜 가져갔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원성왕이 사람을 시켜 사신을 뒤쫓아가서 3마리의 물고기를 빼앗아 왔다. 그 후 우물을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 또는 호국용변어정(護國龍變漁井)이라 불렀다고 한다.
외부는 높이 70cm로 윗부분은 8각형이며, 내부는 원형으로 되어있다. 이것은 불교의 팔정도와 원융(圓融)의 진리를, 우물 안의 4각형은 불교의 근본교리인 사성제를 뜻하는 것이다.
분황사화쟁국사비부(芬皇寺和諍國師碑趺)는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의 받침돌로, 고려 명종 때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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