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1. 24. 21:44ㆍ시사와상식

기억이 시간이 지나도 잊히지 않듯, 법도 종종 그것을 탄생시킨 시대를 훌쩍 넘어서 살아남는다. 어떤 법은 세월 속에 묻혀 다시는 쓰이지 않지만, 어떤 법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되살아나 오늘날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떠오른다.
최근 트럼프가 다시 꺼내 화제가 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은 그런 법률 중 하나이다. 1798년 미국에서 제정된 이 법은 2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국가 안보, 이민 정책, 그리고 대통령 권한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최근에는 국제 범죄 조직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다시 주목받으며 언론의 헤드라인에 오르기도 했으나, 이 법의 진짜 이야기는 과거에 있다.
왜 미국에는 이처럼 오래된 법이 아직도 존재할까?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 흥미로운 역사의 단면을 함께 들여다보자.
1798년에 제정된 적성국 국민법(Alien Enemies Act)은 미국 대통령이 "전쟁 시" 자국 내 적대국민을 가두거나 추방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200년 넘은 법률을 활용해 베네수엘라 범죄 조직을 겨냥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트렌 데 아라과아(Tren de Aragua)라는 베네수엘라 범죄조직이 미국을 상대로 "비정규전"을 벌이고 있다고 지정되면서, 이 법을 적용한 결과 200명 이상의 외국인이 추방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연방법원이 이들의 강제추방을 일시 중단시키며, 해당 법의 합헌성에 대한 우려와 함께 대통령의 전시 권한이 외국인에게까지 미칠 수 있는지에 대한 법적 논쟁이 불거지고 있다. 현재 이들 200명은 엘살바도르에서 구금 상태로 남아 있으며, 상황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판론자들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베네수엘라와 전쟁 중이 아니기 때문에 적성국 국민법(AEA)을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법원은 트럼프의 법률 발동을 허용했으며, 이는 수감된 사람들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한 추방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이 법은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었을까?
적성국 국민법(AEA)은 1798년, 미국 독립전쟁(1775–1783) 이후 국가 안보에 대한 우려가 커지던 시기, 외국인과 내란법 4개 조항(Alien and Sedition Acts)의 일환으로 함께 제정되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 간의 긴장, 영국의 선박 나포와 프랑스의 보복 등으로 인해 신생 미국은 외교적으로 매우 불안정한 입장에 놓여 있었다.연방당의 존 애덤스와 알렉산더 해밀턴은 영국과의 우호를 추구했고, 토머스 제퍼슨이 이끄는 민주공화당은 프랑스에 우호적이었다. 이러한 입장차는 외교뿐 아니라 국내 이민자들의 충성도에 대한 의심으로도 이어졌다.
미국과 프랑스와의 전쟁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민자들이 정치적으로 예측 불가능하며 국가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졌고, 이에 따라 프랑스 편을 들 가능성이 있는 이민자들을 겨냥해 거주와 시민권 취득을 제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였다.
그 결과 대통령에게 외국인을 신속히 추방하거나, 반정부적 표현을 처벌하며, 귀화 조건을 대폭 강화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여러 법률들이 통과되었다.
적성국 국민법(AEA)은 그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한 법으로, 전쟁 시 대통령이 적국 출신 외국인에 대해 구금, 감시, 추방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있다.
당시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사진)은 이 법률들이 위헌이라며 버지니아 및 켄터키 결의안을 통해 반대했지만, 다른 주들로부터는 지지를 얻지 못했다.
결국 외국인법(Alien Friends Act), 내란법(Sedition Act), 귀화법(Naturalization Act)은 만료되거나 폐지되었지만, 적성국 국민법(AEA)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미국 연방법으로 살아남아 있다.
이 법은 “적대국의 원주민, 시민, 거주자 또는 신민” 중 14세 이상으로 미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며, 대통령은 이들의 체류, 이동, 추방 등을 결정할 수 있는 광범위한 권한을 가진다.
이 법이 처음으로 적용된 사례는 1812년 전쟁이었다. 당시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은 영국인을 ‘적국 외국인’으로 분류하며, 이들에게 신고 의무, 해안 지역에서의 강제 이전, 이동과 활동에 대한 제약을 부과했다.
비록 당시 여러 제한 조치가 시행되었지만, 적성국 국민법(AEA) 하에서 정확히 얼마나 많은 영국인이 강제로 이주되거나, 구금되거나, 추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불완전하다.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출신 시민들에게 이 법을 적용하였으며, 이는 특히 군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이들의 언론 및 이동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했다.
적국 외국인으로 지정된 이들은 총기 소지 금지, 통신 검열, 감시 대상이 되었고, 약 10,000명이 체포되었으며, 2,000명 이상은 1918년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수년간 수용소에 구금되었다.
이 법이 가장 악명 높게 쓰인 시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1년 진주만 공격 이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일본, 독일, 이탈리아 출신 비시민권자들을 적국 외국인으로 지정하였다.
당국은 증거 없이 일본계 지역사회 지도자들을 즉각 체포했고, 무기한 구금했다. 이는 단순한 출신 배경에 따라 인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를 남겼다. 전쟁 중이자 그 이후까지, 적국 출신이라는 이유로 개인적 의심 없이 구금된 사람은 3만 1,000명 이상에 달했다. 이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기본 권리를 제한받으며 살아야 했다.
이 법은 결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행정명령 9066호의 법적 기반이 되었고, 이로 인해 일본계 미국인 12만 명 이상이 별다른 혐의 없이 수용소에 감금되었다. 이 중 2/3는 미국 시민권자였다.
이들은 수년 동안 수용소에서 지내야 했고, 가족들은 임시 거주지로 이동된 후, 미국 전역의 황량한 지역에 설치된 장기 수용소로 옮겨졌다.
미드웨이 해전(1942)에서 미국이 승리했음에도 수용소는 오랫동안 폐쇄되지 않았다. 수용소 내에서는 5,000명 이상의 아기가 태어났고, 2,000명 가까운 사람이 생을 마감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시민권자를 대상으로 한 수용은 별도의 법에 근거했지만, 적성국 국민법은 ‘인종 기반 구금’을 정상화하며, 출신과 민족을 기준으로 한 대규모 억압 정책의 길을 열어주게었다.
1987년, 미 의회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 법의 사용을 "근본적인 불공정 행위"라고 공식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은 여전히 미국 연방법으로 존재한다.
1948년 루데케 대 왓킨스(Ludecke v. Watkins)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이 법의 합헌성을 인정하며, 전쟁 종료 이후에도 전시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고 판단하였다.
하지만 몇몇 대법관들은 이에 반대하며, 행정부 권한의 남용 위험을 경고하였다. 이들은 단 한 명의 선출직 인물이 헌법적 자유를 우회할 수 있도록 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였다.
시민권 운동가들과 과거 수용소 생존자들은 이 법이 정치 불안 시기 악용될 수 있다며 지속적으로 폐지를 촉구해왔다.
과거 콜로라도 수용소에 유아 시절 감금되었던 마이크 혼다(Mike Honda) 전 하원의원은 이 법 폐지를 위한 '외국인 이웃법'(Neighbors, Not Enemies Act)을 여러 차례 의회에 제출했으나, 번번이 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폐기되었다.
비록 공식적인 전쟁 선포 없이도, 이 법은 여전히 공공 안전과 시민 자유를 재정의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남아 있다. 미국의 적성국 국민법은 지금도 “누가 이 땅에 속하는가, 누가 결정을 내리는가, 그 대가는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출처:(National Geographic) (Britannica)
'시사와상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Income Crevasse (1) | 2025.11.26 |
|---|---|
| 플린 효과(Flynn Effect) (0) | 2025.11.25 |
| 폰지 사기(Ponzi Scheme) (0) | 2025.11.23 |
| Dignity (0) | 2025.11.23 |
| 거짓말 (0) | 2025.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