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 유치환

2023. 3. 5. 08:53좋은시

 
 
행복 /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 삼고 피어 흥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질투는 나의 힘이다 / 기형도  (0) 2023.03.12
꽃 / 김춘수  (0) 2023.03.05
沙平驛(사평역)에서 / 곽재구  (0) 2023.03.02
쓴맛 / 천양희  (0) 2023.02.16
정읍사 / 백제가사  (0) 2023.0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