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나의 힘이다 / 기형도

2023. 3. 12. 14:04좋은시

 

질투는 나의 힘이다 /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려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눈깨비 / 기형도  (0) 2023.03.12
입속의 검은 잎 / 기형도  (0) 2023.03.12
꽃 / 김춘수  (0) 2023.03.05
행복 / 유치환  (0) 2023.03.05
沙平驛(사평역)에서 / 곽재구  (0) 202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