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 위치한 부여왕릉원 숭목전은 백제 시조 온조왕과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의 7대왕에게 제례를 지내는 사당이다. 대지면적 3,029㎡의 부지에 숭목전과 제례 준비 공간인 전사청, 삼문, 담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숭목전 건물은 하앙식 목구조인 맞배지붕으로 지어졌다.
부여왕릉원에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과 태자인 부여융의 가묘가 있다. 이 고분군에 있는 무덤 중 백제 당대가 아닌 현대에 백제 양식을 참조해 새로 만든 무덤이다. 백제 멸망 후 왕자 부여태 부여융 부여연 및 대신 장사88명 백성 12,807명과 함께 당나라 뤄양(洛陽)으로 끌려간 의자왕은 며칠뒤 병으로 숨을 거두고 뤄양성 (洛陽城) 북망산(北邙山)에 묻혔다고 전한다. 1920년 뤄양 북망산에서 부여웅 태자의 묘지석이 먼저 출토되었고 후에 1995년 낙양시 맹진현 봉황대촌 부근에서 의자왕의 묘역으로 추정되는 곳을 확인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도굴로 인해 시신, 목관의 흔적과 지석은 찾을 수 없었다. 중국 뤄양 북망산에서 부여융 태자의 묘지석 복제품과 의자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곳의 흙을 ..
나성은 성 외곽 또는 성 밖에 겹으로 둘러 쌓은 성을 말한다. 부여나성은 백제의 수도 사비를 보호하기 위해 쌓은 둘레 8km의 성이다. 부소산성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으로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부여시가지 외곽을 둘러싸고 있다. 평양에 있는 나성과 함께 가장 오래된 나성 중의 하나이며,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긴 538년경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성벽은 부소산성의 동문이 있던 자리에서 시작하여 금강변까지 흙으로 쌓아만든 것으로, 지금은 약간의 흔적만 남아있다.
부여왕릉원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 15 일대에위치한고분군이다. 3개의 무덤군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사비시대의 백제 왕릉원으로 알려져 있다. 총 7기의 왕릉급 고분과 동쪽에 5기 서쪽으로 몇 기의 왕족과 귀족들의 무덤이 남아있다. 발굴조사 이전에 이미 모두 도굴당하여 소수의 금제, 금동제 유물만이 수습되었다. 능산리에 있는 고분의 총 개수는 20개이고, 능산리의 고분들은 중앙 및 좌, 우의 세 무리 고분군으로 나눌 수 있다. 1960년대에 복원한 중앙 지역, 2016년에 발굴 조사를 진행한 서쪽 지역과 현재 마을이 자리 잡고 있는 동쪽 지역으로 구성돼 있다. 일제강점기에 3차례 조사된 바 있으며 중앙 지역에 8기, 동쪽 지역에 5기, 서쪽 지역에 7기가 남아 있다. 또한 무덤들 서쪽에서 발굴된 절터에서 ..
가림성 느티나무는 일명 사랑나무로 알려져있는 나무다. 높이 22m, 가슴 높이 둘레 5.4m이고,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려 있는 부분의 폭은 동서 방향 20.2m, 남북 방향 23.5m에 이르며, 수령은 400년 이상으로 추정된다. 경관성, 심미성, 역사성을 인정받아 2021년 8월 9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