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 천상병

2023. 9. 20. 09:04좋은시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정감(情感)에 가득찬 계절

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

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

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