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ty Chair - AGOLOLAND - Yesan - Chung Nam

2023. 10. 4. 07:00창작사진/풍경 들판 길 논 밭

 

빈의자 / 나희덕

 

나는 침묵의 곁을 지나치곤 했다

노인은 늘 길가 낡은 의자에 앉아

안경 너머로 무언가 응시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따금 새들이 내려와

침묵의 모서리를

 

쪼다가 날아갈 뿐이었다

움직이는 걸 한번도 볼 수 없었지만

 

그의 몸 절반에는

 

아직 피가 돌고 있을 것이다

축 늘어뜨린 왼손보다

무릎을 짚고 있는 오른손이 그걸 말해준다

 

손 위에 번져가는 검버섯을 지켜보듯이

그대로 검버섯으로 세상 구석에 피어난 듯이

자리를 지키며 앉아 있다는 일만이

그가 살아 있다는 필사적인 증거였다

 

어느 날 그 침묵이 텅 비워진 자리,

세월이 그의 몸을 빠져나간 후

웅덩이처럼 고여 있는 빈 의자에는

작은 새들조차 날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