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5. 1. 06:40ㆍ국내여행/충청도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 행단길 23-4에 위치하고 있는 맹씨행단은 조선 초기 세종 때 영의정으로 검소한 생활과 원칙에 철저한 학자로 명성을 높인 맹사성의 집안이 살던 곳이다. 이곳은 본래 고려 말기 충절의 상징이 되는 최영 장군의 가옥이었는데, 최영 장군과 맹사성의 할아버지와의 인연으로 맹사성은 그의 손녀사위가 되었다. 이후 맹사성이 물려받아 그의 집안이 살게 되었다.
맹사성의 행단 즉 맹씨행단(孟氏杏壇)이란 가옥명은 공자가 은행나무 위에서 가르쳤다는 얘기에서 나온 말로, 학문을 닦는 곳을 행단이라 한 것에 연유되어 그리 부르게 된거 같다. 그도 그럴것이 고택에는 맹사성이 단(壇)을 만들어 공부했다는 수령 640년 생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행단의 상징처럼 우뚝 서 있기도 하다.
맹씨행단(孟氏杏壇)에는 맹사성고택(孟思誠故宅). 세덕사(世德祠), 쌍행수(雙杏樹), 구괴정(九槐亭)이 있다
참고로 맹사성(孟思誠)은 권근(權近)의 문하에서 수학한 후 1386년(우왕 12) 문과에 장원급제하면서 춘추관검열을 거쳐 내직과 외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 때 예조의랑이 된 이래 정종, 태종, 세종 대까지 4대 왕을 모셨다. 맹사성은 청백리의 상징이자 명재상으로 명성을 떨쳤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맹사성은 고향에서 한가롭게 생을 보내며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라는 시를 지었다. 맹사성은 벼슬에 있을 때나 물러났을 때나 항상 청백하여 식량은 늘 녹미(祿米)[녹봉으로 주던 쌀]로 하였고, 출입할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태우는 가마도 사용하지 않고 소 타기를 좋아하였다. 79세에 사망하였을 때 세종은 친히 조상(弔喪)하고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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