有貞亭 - 발해역사관 - 속초시립박물관 - 속초시 - 강원도

2024. 10. 19. 15:16국내여행/강원도

 

 

속초시립박물관에 있는 발해역사관을 가다보면 입구 중간쯤에 작은 연못에 물레방아가 설치되어 있는 발해연못이라는 곳과 유정정(有貞亭)이라는 정자가 나온다. 이 유유정(有貞亭)이라는 정자에 올랐다가 우연히 정자안에 붙어있던 현판을 읽게 되었다. '서러운 내 삶의 휴식을 바라며 ' 라는 제목으로 새겨진 그 글은 편지형식의 글이였는데 그 내용이 너무도 애절하여 혼자 읽기에는 그래서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어쩌면 그분에겐 유서를 쓰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지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글을 쓸때 이분의 연세가 80대 중반이고 글을 쓴 년도가 2017년4월, 지금으로부터 7년전의 일이니 지금은 90대 초반이나 중반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짐작을 해본다. 지금까지 살아계시다면 남은 여생 건안하게 지내시기를 간절하게 소망해본다.  편지 끝머리 당신 성함옆에 요한 이라는 세례명을 써놓은 것으로 보아 나와 같은 가톨릭신자인거 같다. 

 

서러운 내 삶의 휴식을 바라며

 

내 인생은 4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7세 되신 어머니와 우리 3남재는 김치 하나 가지고 서로 먹겠다고 아웅다웅 하면서 살았지요. 일제강점기에 초등학교 1학년 시절 늦가을 서리가 하얗게 왔는데 신발이 없어 어머님께서 최씨 할아버지한테 말해놨다 약 2km 이상 돌아 맨발로 학교 가는길에 가니 짚은 구해놨으나 천을 못구해 짚과 천을 섞어 만들어야 어린아이들한테 발도 편하고 피도 나지 않고 빨리 구해 만들어 갔다 줄테니 오지마라.

 

우리 3남매는 밥도 많이 굶고 살았지요. 30대 어머니와 우리 3남매는 굶었고 어렵게 생활했으나 27세에 홀로 되신 어머니와 시골에서 모범 어머니 모범 청년으로 자랐지요.

 

6.25전쟁에 18세 나이로 군에서 안면 부상으로 대중 앞에서 얼굴 한번 떳떳하게 들어보지 못하고 90을 바라보는 이날까지 살고 있지요. 지금도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좀 물어 보면 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나의 얼굴만 빤히 처다보곤 말없이 그냥 가지요. 이 심정을 누가 알리요.

 

저는 60대 자식에 실패하고 80대가 되어 지인들이 재산을 정리하라고 하여 많은 생각도 하고 자문도 받아보고 피가- 물보다 진하다 하여 타 단체보다 종중에 구도로 약속하고 전 재산을 조상님의 문토로 다 헌납했지요.

 

서류 하나 받지 못하고 딸은 이 아버지한테 불심만 하고 3여년 세월 가도 서류도 안되고 대화도 서로 할 수 없고 하여 피붙이 하나 없는 북한과 가까운 철원 양구 고성에 전투 나면 먼저 죽고 싶은 심정이였지요.

 

막상 가보니 교통 불편하여 이곳 속초 열랑동 앞에는 영랑호 뒤에는 열랑항 저 멀리 푸른 수평선이 나의 벗이 되겠다 싶어 이곳으로 정착하게 되었지요.

 

80중반에 고향을 4회차나 떠나올 때 누구 하나 같이 오는 이 없이 혼자 이삿짐 차에 오면서 동해바다 물도 부족할 만치 한없이 많이 울었지요.

 

이곳 3년여 동안 80중반에 혼자 살면서 지인들이 헌납한 재산 물증을 남기려면 정자나 또는 암벽에 새겨야 한다는 그 말에 몇 일을 두고 생각 끝에 무턱대고 시장을 찾아가 상면하게 되어 저의 뜻을 전한바 이변선 시장님께서 쾌히 승낙을 하여 이곳에 정자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문패비와 주목 나무 수종은 제가 시장님께 청해서 정했지요.

 

저는 지금까지 살아온 이 세상에서 낙엽과 같은 인생으로만 살았는데 저 세상에서는 푸른 나무와 같이 영원토록 푸르게 살고 싶은 심정이었지요.

 

제가 조상님께 헌납한 새산목록은 정자 밖 비목에 표시되었는데 그 점 참작하시기 바람니다

이곳 와서 하루도 울지않은 날 없지요. 일평생 땀흘려 모은 재산 다 바치고 이날까지 일만하고 살았지요.

 

마지막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춘삼월에 기나 긴 해는 저멀리 서산을 넘네 나도 해따라 산 따라 가지요. 눈만 뜨면 생각했네 나를 반기는 이 하나 없네

 

아 내 정든 내 고향은 어데지,,,

 

2017.4

 

조규성(요한)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