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1. 14. 16:24ㆍ창작사진/조각 동상 작품 소품 조형물
정순왕후는 14살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에 책봉되었다.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일임하고 상왕이 되자 왕대비가 되어 의덕(懿德)의 존호를 받았다. 그러나 1457년,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추진하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상왕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의덕왕대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궁에서 쫒겨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송씨는 시녀들이 동냥해온 것으로 끼니를 잇고 염색업을 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이를 안 세조가 집과 식량 등을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한편, 그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녀자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그의 집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고자 시장을 조직하는 일도 있었다.
청계천에 있는 영도교(永渡橋)는 귀양 가는 단종과 정순왕후가 마지막으로 헤어진 곳으로 전해지는데, 결국 두 사람은 이승에서는 만날 수 없었다. 단종이 끝내 유배지인 영월에서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부군의 죽음을 전해 들은 송씨는 평생 흰옷만 입으며 고기와 생선은 먹지 않았고 매일 아침 저녁으로 동망봉(東望峰)이라 불리우는 바위를 올라 영월을 향해 통곡을 하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다. 이후 세조는 그에 대해 '신분은 노비이지만 노비로서 사역할 수 없게 하라'는 명을 내려 아무도 범하지 못하도록 정업원(淨業院)으로 보냈다. 정업원은 부군을 잃은 후궁들이 출궁하여 여생을 보냈던 곳이다.
단종과 정순왕후는 3년여간 함께 살았다. 정순왕후는 81세의 나이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정순왕후의 묘는 남양주에 있는 사릉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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