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와 벌(Prestupleniye I nakazaniye)
2023. 3. 25. 15:04ㆍ자작글/산문
우리는 수단이 나빠도 결과가 좋다면 괜찮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목적을 이룬다는 명분으로 악을 저질렀다면, 그 목적은 더 이상 선이 될 수 없다.일단 저지른 수단으로서의 악은 우리 사회에 이미 새로운 해악으로 자리잡게 된다. 목적으로서의 선이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할지라도 수단인 악에 의해 파생된 나쁜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것이다.이미 저질러진 악의 폐해를 없었던 일로 깨끗이 되돌려 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경우 선이란 또 다른 악을 파생시킨 근원이며, 새로운 죄악의 결과물일 뿐이다. 악을 해소하기 위하여 또 하나의 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렇듯 악의 연장선 위에 있는 선이란 애초에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인류의 발전이라는 목적을 위해 전쟁·혁명·건설 등이 일어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범인(凡人)들이 희생되는 것쯤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가 숭배했던 나폴레옹의 위업은 사실 수많은 인간을 짓밟고 태어난 결과물이었다. 한 사람의 목적을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목숨이 하찮은 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그러나 기생충에 불과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그 존재를 빼앗아도 된다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주어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존재 자체로서 이미 목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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