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머리카락

2023. 4. 9. 09:13자작글/산문

 

모친께서 잠시 마트에 가시고 혼자 집을 지키려니 안방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일인가 하여 안방문을 열어보니 병환으로 누워계신 부친께서 나에게 할말이 있으신지 고개를 겨우 나에게로 돌리시며 중얼거리신다. 도무지 무슨말인지 알아들들 수가 없기에 가까이 다가가서 큰소리고 다시 여쭤보니 머리가 가려우니 긁어 달라고 말씀하신다.

 

머리 긁는 전용부러쉬로 살살 머리를 빗겨드리다 보니 브러쉬에 걸리는 몇 올 남지 않은 백발의 머리카락이 내마음을 쿡 하고 찌르는 것같다. 살아오면서 너무도 당당하게 사셨기에 가는 세월과 병마에 저토록 무너져 쉼게 부너져 버릴줄을 나는 물론 가족 어느누구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기에 더 마음이 아프게 느껴지는 듯 싶다.

 

며칠전부터 부친께서는 병환이 더 깊어졌는지 모친과 내가 양쪽에서 부축을 해도 도저히 일어서지를 못하시는 것 같다. 그나마 그동안엔 한쪽발에 의지를 하며 일어서거나 부축을 받고 걸으셨는데 아마도 그 다리마져 파킨스씨병마에 의해 갑자기 마비가 되고 말았나보다.

 

병원에 입원을 한다고 하여 치유가 되는 병도 아니기에 더더욱 답답하기만 하다. 아침저녁으로 꼬박 꼬박 챙겨 드시곤 하는 병원에서 제조를 해준 약을 먹으므로써 치유가 아닌 병의 진행만을 막아주는 한마디로 불치의 병인 것 만을 확실 한 것 같다.

 

방안에서는 용변을 해결을 하지 못하시는 부친의 깔끔한 성격탓으로 모친께서는 여러가지의 방법을 연구하여 부친의 화장실사용을 돕고 계시고 있기는 하지만 부축을 한다 해도 일어서지 못하는 환자를 수발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므로 모친의 고생은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더우기 부친과 같이 까다로운 성격을 가진 환자를 수발한다는 것은 다른 환자들보다도 배로 힘이 드는 이유로 요즈음 모친의 얼굴이 이젠 반쪽으로 줄어드신 것 같다.

 

아무튼 몇올남지 않은 부친의 머리카락을 부러쉬로 빗어드리면서 자세히 살펴본 부친의 머리속의 빛깔은 너무도 하얗게 변해있었다. 아마도 2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누워계신탓으로 피부의 빛깔마져도 백지장처럼 그렇게 창백하게 변해버린 듯 하다. 귀까지 어두워져버린 부친과의 답답한 대화를 나누면서 내가슴이 철렁 무너져 내리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게 다가오던지,,,

 

고령이 되어버린 아버지의 모습은 그것도 병석에 누워계신 부친의 모습은 정말 쓸쓸하게 보이는 것 같다. 평화로운 표정을 가지고 계신 모친의 모습과는 정말 느낌부터 다른 것 같다. 아버지란 우리 자식들의 기억속에는 빛나던 시절의 군왕처럼 존재하고 있는 그런 분이시기에 지금의 초라한 환자의 모습으로 남아있는 부친의 모습에 더더욱 큰 안타까움과 아픔을 느끼게 되나보다.

 

"아버지,,머리 긁어 주니까 이제 좀 시원하세요,,,너무 오랫동안 벼개에 머리를 대고 누워계셔서 가렵나 봐요,,,다음에 또 가려우면 긁어드릴께요..."

 

",,,수고 했다,,,그런데 엄마는 언제 오냐,,,"

 

촛점을 잃어버리고 아기처럼 엄마를 기다리는 부친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러워 나는 그만 안방의 유리창너머로 높게 펼쳐져 있는 하늘을 바라다 볼수 밖에 없었다. 뜨거운 물줄기가 내 볼을 타고 내려오는 묘한 느낌이 자꾸만 들기에,,,,,,지금 내가 왜이러지,,,

 

몇올남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이 벼개에 눌려 부친의 지금의 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 하여 마음은 시렸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부친의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드리는 것 밖에 없었으므로 나는 부친의 몇올밖에 남지 않은 머리카락만 만지작 거리는 것으로 그저 만족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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