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기

2023. 4. 8. 12:31자작글/산문

 

동전소리가 덜그덕 나는 공중전화기는 참 낭만스럽다. 휴대폰의 발달로 인해 지금은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우리들의 과거속에는 분명 노스탈쟈처럼 아련하게 기억되는 공중전화기에 관련된 추억들이 머물고 있기도 하다.

 

세상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노란동전 두개면 해결되던 참으로 가난한 시절 비가 몹씨 내리던 날 가슴설레이며 연인에게 전화를 걸며 전화박스지붕에 떨어지던 빗방울 소리와 전화수화기를 통하여 들려오는 아름다운 연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행복해 하였던가,,,

 

지금생각해 보면 정말 촌스럽기만 한 빨간색으로 칠해진 공중전화기는 우리들에게 비록 발신음소리만 듣는한이 있게 되더라도 많은 순수함을 주었던 것 같다. 공중전화기 앞에 서기만 하면 세상의 나쁜 악은 절대로 존재하지가 않는듯이 그저 반갑고 설레이고 좋기만 했었던 것 같다.

 

모토로라 휴대폰이 출현하면서 나 역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일이 거의 없었는데 유럽에 가서야 공중전화기를 다시 이용하게 되었다. 그때의 공중전화기는 나의 정신을 빼앗을 정도로 지독했던 향수병을 가라앉게 해 주었으며 또한 외로움에 지친 나에겐 아주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고마운 통신설비 였었던 것 같다.

 

틈만나면 암스테르담 차이나타운으로 가는 다리위 공중전화기의 수화기를 붙들고 늘어지며 2시간 정도 사용할 수 있는 20유로짜리 국제전화 카드를 한꺼번에 모두 다 사용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전화부스도 없는 사각형의 공중전화기가 알몸으로 장승처럼 서있던 암스테르담의 공중전화기는 사용하기도 참 힘들엇지만 비가 오든 눈이 오든 그 곳에서 전화를 걸때를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젖기도 한다.

 

아무튼 그때의 습관으로 나는 지금도 가끔 공중전화기를 사용하곤 하는데 그때만큼 좋거나 감미롭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자주 사용하지는 않고 있지만 지갑속에는 늘 비상용 전화카드를 가지고 다니곤 한다. 때론 늘 텅텅비어있는 공중전화부스에서 전화를 걸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선으로 날라오는 바쁜 목소리도 좋긴 하지만 가느다란 전화선을 타고 천천히 전달되는 목소리도 꽤 낭만이 있고 아름다울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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