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도 / 신경림

2023. 9. 20. 06:58좋은시

 

무인도 / 신경림

 

너는 때로 사람들 땀 냄새가 그리운가 보다

밤마다 힘겹게 바다를 헤엄쳐 건너

집집에 별이 달리는 포구로 오는 걸 보면

질척거리는 어시장을 들여다도 보고

떠들썩한 골목을 기웃대는 네 걸음이

절로 가볍고 즐거운 춤이 되는구나

 

누가 모르겠느냐 세상에 아름다운 게

나무와 꽃과 풀만이 아니라는 걸

악다구니엔 짐짓 눈살을 찌푸리다가

놀이판엔 콧노래로 끼여들 터이지만

 

보아라 탐조등 불빛에 놀라 돌아서는

네 빈 가슴을 와 채우는 새파란 달빛을

슬퍼하지 말라 어둠이 걷히기 전에 돌아가

안개로 덮어야 하는 네 갇힌 삶을

 

곳곳에서 부딪히고 막히는 무거운 발길을

깃과 털 속에 새와 짐승을 기르면서

가슴속에 큰 뭍 하나를 묻고 살아가는

너 나의 서럽고 아름다운 무인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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