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날은 공치는날 / 김재곤 비내리는 음봉삼거리 길가 함바집 가설건물 양철처마끝에 모이는 시선들이 불안하다 비오는날은 공치는 날 일당 잡부 김씨아저씨 불안한 표정이 거칠다 그나저나 저 비는 언제 그치냐
유혹 / 김재곤 술잔을 비우자분홍의 취기가익어간다 뒷골목 삐끼처럼내앞을 가로막던붉은 네온의 빛 차마 비우지 못한청춘의 세포들이한곳으로 몰리고 귓가에 맴돌던간절했던 목소리 '아저씨 이쁜여자 있어요'
산사에서 / 김재곤 인적조차 끊어진 깊은 산사 고운햇살 하나 이끼 낀 돌계단을 간지럽히고 추녀끝을 맴도는 낯선 바람은 작은 풍경을 울린다 키작은 낡은 석등이 긴 그림자로 마당 깊이 누울때 요사체앞 소나무 자갈밟는 소리에 놀라 살며시 그늘속에 몸을 숨긴다
가을 / 김재곤 적색 황색 갈색 서로 먼저라 다투며 계절이 깊어간다 빛나던 지난여름초록의 향연은한 순간의 꿈이였나초록이 비켜난 자리서로 먼저 자리잡는단풍의 고운빛깔들 바쁘게 가던 바람도그 빛에 취하여가던길을 멈춘다
봄 / 김재곤 분홍빛 벨벳옷을 입고 저만치서 오시는 이가 정녕 내님이련가,,, 터져버릴듯 목련꽃은 서늘한 밤바람에 마음만 조아리고 있는데 저기 저만큼 초록면사포 머리에 이고 사뿐 걸어오는 이가 정녕 내님이련가,,, 식어버린 햇살도 구겨진 구름속에서 몸을 사리고 있는데,,, 아서라 내가 살랑 살랑 봄바람되어 그대 위해 노래 하리니 그립던 이여오던길 멈추지 말고 곧장 내게로 오소서
그리움 / 김재곤 여명의 빛이 푸르게 물든 새벽 날카로운 첨탑끝으로 음산한 까마귀가 울어댈때부터 불안한 이별을 예감했었다 한숨소리 같던 팬 플랫 소리가 조각난돌이 깔려있던 거리위를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갈때도 너는 없었지만 나는 있었고 나는 있었지만 너는 없었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내 어리석은 사랑아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날처럼 팬플랫 소리가 아프고 그대 닮은 부뤼쉘의 푸른새벽이 물병에 떨어친 잉크처럼 가슴속에 번지는오늘같은 날엔
문밖의 그대 밤새 창문 두드린이가 당신이였나요 그것도 모르고 무심하게 잠만 잤나봅니다 날마다 찾아오는 어둠인지 알았어요 가끔 다녀가는 바람인줄만 알았지요 그리 오실꺼라면 기별이라도 하지 그랬어요 찬이슬에 젖지 않았는지 밤바람에 떨지 않았는지 쓸쓸한 발자욱만 남아있는 문밖의 작은 뜰에는 당신이 남기고 간 젖은 향기가 데이지꽃처럼 피어있었네요 맞네 맞네 밤새 창문 두드리며 문밖에 서있던 것은 날마다 오는 짙은 어둠도 어쩌다 부는 바람도 아닌 정녕 봄을 닮았을 바로 당신이였나 봅니다
브라더미싱 / 김재곤 드르륵 드르륵 엄마의 작은 골방에서 미싱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신주단자 모시듯 곱게 보관된 삼십년도 더 되었을듯 싶은 낡은 브라더 미싱 옷만 만들었을까 까마득하게 지나온 세월 가슴에 숨겨놓고 살았던 말하지 못할 고통까지 함께 박았던 것은 아닐까 엄마의 작은 골방에선 세상을 향해 하고 싶었던 엄마의 넋두리같이 브라더 미싱이 소리를 내며 돌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