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장내에 있는 회화나무는 강릉시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00년 높이 25m 둘레 3.8m의 고목나무다. 회화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종으로 나무 높이가 30m, 직경이 2m까지 크게 자랄 수 있어 은행나무, 느티나무, 팽나무, 왕버들과 함께 우리나라 5대 거목 중의 하나이며, 현재 500~1,000년 된 나무 10여 그루가 노거수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한자로는 괴화(槐花)나무로 표기하는데 발음은 중국발음과 유사한 회화로 부르게되었다. 홰나무를 뜻하는 한자인 '槐'(괴)자는 귀신과 나무를 합쳐서 만든 글자이다. 회화나무가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은 것은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에 많이 심었다. 그리고 서원이나 향교 등 학생들..
선교장 뒷산 소나무 숲과 선교장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아름다운 둘레길은 선교장을 중심으로 좌는 청룡길 우측은 백호길로 나누어져 있으며 야간에는 조명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둘레길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릉선교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선교장박물관은 55칸 건물 중 대표건물인 열화당(悅話堂)과 그 옆 행랑채에 3개의 전시실을 꾸미고, 별도로 민속자료 전시관을 마련하여 조선시대 후기부터 한 말에 이르기까지의 각종 유물 8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제1전시실은 가구자료실로서 담배함·문갑·탁자 등 옛 사랑방과 안방 세간살이를, 제2전시실은 식생활자료실로서 다기(茶器)·제사용기 등 식생활 용구를, 제3전시실인 전적(典籍)자료실은 저명학자들의 서한문과 고서 등 전적자료를, 제4전시실인 민속자료전시관은 각종 복식류와 장신구를 진열하고 있다. 또, 전시된 유물 외에도 3000여 점의 고서와 서화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선교장은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가화당, 서별당, 연지당, 홍예헌1관, 2관, 초가 1관, 2관, 중사랑, 행랑 등 다양한 한옥스테이 공간이 있다. 그 중 초가집은 선교장의 집사와 하인들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으로, 현재는 한옥 스테이를 위한 숙소로 제공되고 있다.
강릉 선교장 가화당은 가족실로 사용되는 공간으로, 전통 의상 체험 등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선교장 열화당 뒤편 초정(草亭)은 열화당 후원의 정자로, 시문을 짓고 책을 읽던 곳이다. 또한 초가에 살고 있는 소작인들의 애환과 삶을 공감하고 검소와 베풂의 덕을 수련하도록 소박하게 지었다고 한다. 원추리 군락지가 조성돼 있어 ‘녹야원(鹿野苑)’이라고도 불리는데, 원추리의 야생력과 번식력이 선교장가에도 이어지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고 있다.
선교장 내에 위치한 동진학교는 1908년에 개조되어 신학문을 가르치던 곳으로, 김구, 이시형 선생이 학교 설립을 돕고 동양 여운형이 영어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후 일제의 탄압에 의해 폐교되었으며, 현재는 선교장의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중사랑은 선교장 사랑채인 열화당의 부속건물로 집안의 아들 혹은 귀한손님의 거처로 사용되었다.지금은 건물을 반으로 나누어 한옥 스테이 숙박객 두 가족이 서로 독립된 입구와 공간을 사용하게 구성되어있다
열화당 맞은편에 늘어선 23칸의 행랑채는 줄을 선 듯한 모습이어서 ‘줄행랑’이라고 부르는데, 이 단어가 선교장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줄행랑이 ‘도망’을 뜻하는 말로 와전됐으나, 원래는 줄지어 늘어선 행랑 또는 부자의 의미로 쓰였다. 이 줄행랑에 관동팔경과 경포대를 유람하는 선비들이 묵었다.
선교장의 열화당(悅話堂)은 1815년 지어진 건물로 선교장의 큰 사랑채이다. 열화당의 차양시설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선물로 기증한 것으로 러시아 양식의 차양시설이다. 열화당(悅話堂)은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현재는 오르간을 설치하여 선교장 문화 예술의 중심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릉 선교장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중인 tvN 드라마 ‘정년이’에서 매란국극단의 전체 전경을 촬영한 곳이다. 매란국극단은 주인공 윤정년(김태리 분)이 연구생으로 들어간 극단으로, 윤정년이 극단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도 강릉선교장의 한옥들이 등장한다. 오디션 결과를 발표하는 매란국극단의 마당으로 나오는 곳은 강릉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 앞 마당이다. 歸去來辭(귀거래사) / 陶淵明(도연명) 歸去來兮(귀거래혜) ..
선교장내 서별당(西別堂)은 1995년 11월에 건축되었다. 원래의 것은 무경의 증손인 이용구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안채와 열화당사이의 깊숙한 곳에 위치하였는데 선교장에서 가장 높은 지대가 된다. 전주이씨가의 서재와 서고로 사용되었으며, 석축위 조금 높직한 기단상부 평탄지에 안채와 같은 높이로 연결되었다. 서고는 누마루형식으로 되어 문을 열면 통풍이 잘되고, 마루는 여름철, 방은 겨울철의 독서실로 이용되었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선교장의 안채주옥은 1703년에 처음 건립된 건물로,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의 10대손인 이내번이 안채주옥 터가 길지(吉地)임을 알아보고 최초의 건물터로 낙점하였으며, 이는 만석꾼 부의 출발점이 된 풍수적 ‘신의 한 수’라고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안채주옥은 선교장 건물 중 가장 서민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며, 안방과 건너방이 대청을 사이에 두고 있고 부엌이 안방에 붙어 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안채주옥은 선교장 종부(안방마님)의 거처이며, 직계 여인들이 함께 이 곳에서 생활하였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선교당 안채와 사랑채를 들어가는 문이다. 문입구에는 '선교유거(仙嶠幽居)’라고 적힌 현판이 달려 있다. ‘신선이 거처하는 그윽한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 후기 서예가 이희수가 썼다.
활래정(活來亭)은 선교장내 정원의 인공 연못 가운데에 세워진 누각 형식의 정자다. 활래정은 선교장의 사랑채인 열화당을 건립한 다음 해인 1816년(순조 16)에 오은거사 이후가 건립하였다. '활래정(活來亭)'이란 이름은 주자의 시 ‘관서유감(觀書有感)’ 중 ‘위유원두활수래(爲有源頭活水來)’에서 집자한 것으로, ‘맑은 물은 근원으로부터 끊임없이 흐르는 물이 있기 때문’이라는 의미이다. 이 활래정 연못의 물은 경포천을 거쳐 경포호로 흘러간다고 한다.
1.활래정 2.안채주옥 3.동별당 4.사당 5.외별당 6.열화당 7.초정 8.생활유물전시관 9.동진학교터 10.자미재 11.야외공연장 12.선교장박물관(문물관) 13.교육관 14.가화당 15.디딜 방앗간 16.서별당 (명품고택) 17.연지당 (명품고택) 18.중사랑 19.행랑채 20.초가1관 21.초가2관 22.홍예관1관 23.홍예관2관 24.한국전통문화체험관 25.민속목공방 26.전통한식 / 향토음식 리몽 27.카페 리몽 28.매표소 29.백호길 30.청룡길 31.전망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운정길 63에 위치하고 있는 강릉 선교장은 조선후기 사대부가 살던 그야말로 99칸 상류주택이다. 선교장(船橋莊)은 예전 경포호가 지금보다 넓은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