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령포(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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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룻배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청령포를 가기 위해선 나룻배를 타야한다. 나룻배는 매일 9시부터 18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성인 기준 3,000원이다.
2024.11.14 -
청령포(淸泠浦) - 영월군 - 강원도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청령포(淸泠浦)는 남한강의 지류인 서강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이곳은 단종이 세조(수양대군)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등되어 유배되었던 곳이다.
2024.11.14 -
단종과 정순왕후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정순왕후는 14살의 나이로 한 살 연하였던 단종과 혼인하여 왕비에 책봉되었다. 단종이 수양대군(세조)에게 왕위를 일임하고 상왕이 되자 왕대비가 되어 의덕(懿德)의 존호를 받았다. 그러나 1457년,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추진하던 단종 복위 운동이 발각되자 상왕 단종은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었고, 의덕왕대비는 군부인이 되어 궁에서 쫓겨났다. 궁에서 쫒겨나온 정순왕후는 동대문 밖 숭인동 청룡사 근처에 초암을 짓고 시녀들과 함께 살았다. 정순왕후는 시녀들이 동냥해온 것으로 끼니를 잇고 염색업을 하며 어렵게 살았는데, 이를 안 세조가 집과 식량 등을 내렸으나 끝내 받지 않았다. 한편,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녀자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정순왕후의 집으로 먹을 것을 건네주고자 시..
2024.11.14 -
단종 - 단종어소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단종(端宗)은 조선의 6대 왕이다. 본명은 이홍위이고 세종의 적장손이자 현덕왕후의 적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손으로 책봉되었으며 세종이 사망하고 문종이 보위에 오르면서 왕세자로 개봉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 현덕왕후가 산후병으로 죽었고 할아버지 세종과 할머니 소헌왕후도 단종이 어렸을 때 사망했으며, 마지막 남은 직계 존속인 부왕 문종마저 지병 등창의 재발과 악화로 승하하면서 혈혈단신으로 어린 나이(만 10세 10개월)에 보위에 올라 김종서, 황보인 등 원로 고명대신들의 보좌를 받게 되었다. 즉위한지 1년 후 숙부 수양대군이 반란(계유정난)을 일으켜 권력을 잡자 반강제적으로 실권을 빼앗기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왕위를 빼앗겼다. 상왕 재위기에 일어난 단종복위운동의 여파로 자신의 권력에 위협을 느낀 숙부 세조에 ..
2024.11.14 -
단종과 선비 - 단종어소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추익한(秋益漢)은 조선 전기의 문신,홍문관부수찬,호조좌랑,호조정랑을 거쳐 한성부윤을 역임한 사람으로 단종이 세조(수양대군)에 의해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로 유배되자 단종을 사모하는 마음이 깊었던 추익한은 단종을 찾아가 시를 읊어 위로하고, 산에서 직접 딴 산머루와 다래를 진상하였다고 한다. 추익한(秋益漢)은 단종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이를 애통해하다가 절명하였고 이에 영월 사람들은 추익한을 추충신(秋忠臣)이라 불렀다고 한다.
2024.11.14 -
針母 - 行廊 - 淸泠浦 - 江原道
궁녀를 나인(內人)이라고도 부른다. 궁녀의 조직은 지밀(至密), 도청(都廳), 처소(處所)로 구별하였다. 지밀(至密)은 비서실과 같은 곳으로 하루의 일과를 밀착 수행하는 나인을 지밀나인, 도청(都廳)은 침방(針房)과 수방(繡房)은 옷을 짓고, 수를 놓는 곳으로 이를 수행하는 나인을 침방나인 수방나인, 처소(處所)는 세숫물을 바치고 물을 데우며, 세숫대야나 수건을 세탁하는 세수간, 수라 이외의 죽, 전과, 식혜 등을 만드는 생과방(生果房), 왕과 왕비의 아침·저녁 수라를 짓는 내소주방(內燒廚房), 잔칫상·빈객 접대에 종사하는 외소주방(外燒廚房), 수랏상을 물리고, 식은 음식을 다시 데우는 중간 부엌 역할을 하는 퇴선간(退膳間) 등에 속한 나인이 처소나인이라고 한다. 사진의 침모는 단종의 유배지인 청령포의..
2024.11.14 -
망향탑과 노산대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聞子規 / 端宗문자규 / 단종 一自寃禽出帝宮 일자원금출제궁孤身隻影碧山中 고신척영벽산중 假眠夜夜眠無暇 가면야야면무가 窮恨年年恨不窮 궁한년년한불궁 聲斷曉岑殘月白 성단효잠잔월백血流春谷落花紅 혈류춘곡낙화홍 天聾尙未聞哀訴 천성상미문애소 何乃愁人耳獨聰 하내수인이독총 두견새 소리를 들으며 / 단종 한 맺힌 새 한 마리 궁전에서 날아와 외로운 몸 짝없는 그림자가 되어 푸른 산속을 해메네 밤마다 자는 듯 잠 못 이루고 해마다 쌓이는 한 풀리지 않네 울음마저 그친 산에는 새벽달이 창백하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는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를 먹어 피맺힌 절규 듣지 못하는데 어찌하여 수심에 겨운 내 귀만 홀로 총총할까 망향탑은 청령포 뒤 층암절벽위에 있는 돌탑이다. 단종이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근심 속에서도 ..
2024.11.13 -
관음송(觀音松탑)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에 위치하고 있는 청령포(淸泠浦)의 관음송은 수령이 약 600여년생이며 높이 30m, 가슴높이 둘레 5m이다. 줄기는 지상 1.2m 높이에서 둘로 갈라져 동서로 약간 비스듬히 자란다. 갈라진 줄기의 밑둘레는 각각 3.3m와 2.95m이며, 수관의 폭은 동서 23.3m, 남북 20m이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端宗)이 청령포 이곳에서 유배 생활을 할 때 둘로 갈라진 나무줄기에 걸터앉아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단종의 비참한 모습과 울음소리를 지켜보고 들었다 하여 소나무에 ‘관음(觀音)’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24.11.13 -
금표비(禁標碑)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청령포에 세워져있는 금표는 민간인 출입 금지를 알리는 목적으로 세운 조선 후기 석비로써 조선시대 영조가 왕위에 오른 이듬해인 1726년 단종 유적이 있는 청령포에 금표비를 세워 동서 300척(91m), 남북 490척(148.5m)범위에 민간인 출입을 금하는 금표 설치를 명하였다. 영월부사 윤양래가 비문을 써 설치하였다.
2024.11.13 -
단묘유지비(端廟遺址碑)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청령포에 세워져있는 단묘재본부시유지비(端廟在本部時遺址碑)는 영조 때 단종이 머물렀던 건물 터의 위치를 표시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즉 단종이 이곳에 머를 때에 남은 옛터라고 적혀있고 비 뒷면에는비석 뒷면에는 ‘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 三癸未季秋, 抆涕敬書, 令原營 竪石, 地名淸泠浦 세황명숭정무진기원후 삼계미계추, 문체경서,령원영 수석, 지명청령포’ ‘명나라 숭정황제가 연호를 반포한 무진년(1628년)으로부터 세번째 돌아온 계미년(1763년) 가을에, 눈물을 닦으며 삼가 써서, 원주감영에게 명하여 비를 세우다. 지명은 청령포이다‘ 라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2024.11.13 -
단종어가(端宗御家) - 청령포 - 영월군 - 강원도
단종어소 혹은 단정어가는 영월 청령포에 위치하고 있는 어소로 『승정원일기』 기록에 따라 기와집으로 당시 모습을 재현하였다. 어소에는 단종이 머물던 정면 5칸 측면 2칸 반의 겹치마 팔작지붕의 기와집인 본채와 궁녀 및 관노들이 지내던 행랑채인 초가집이 있으며, 어소 담장 안에 단묘재본부시유지비가 있다. 어소는 임금이 계시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2024.11.13 -
청령포(淸泠浦) - 영월군 - 강원도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에 위치하고 있는 청령포(淸泠浦)는 세조(世祖)에 의해 노산군(魯山君)으로 강봉된 단종의 유배지로, 그 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처소를 영월 객사인 관풍헌(觀風軒)으로 옮기기 전까지 단종이 머물던 곳이다. 청령포에는 유배 당시 거처인 기와집인 단종어가 한 채와 호위하던 시종들이 사용하던 초가 건물이 복원되어 있다. 유배 당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금표비(禁標碑), 영조 때 세운 단묘유적비(端廟遺蹟碑), 2000년 4월 단종문화제 때 세운 단종어가(端宗御家)등이 있으며, 단종이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定順王后)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막돌을 주워 쌓았다고 전해지는 돌탑인 망향탑(望鄕塔), 단종이 올라가 놀았다는 소나무 관음송(觀音松탑), 단종이 한양을 바라..
2024.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