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원조 청담동사람

2023. 4. 8. 12:04자작글/산문

70년대초 내가 고교생이던 시절엔 세상이 지금처럼 똑똑하지가 않고 많이 어리숙 했었던 것 같다. 서울의 모습도 지금과 같이 세련되지는 못했던 것 같고 나름대로는 이웃간의 정을 나눌수 있는 그런 여유로움도 있었던 듯 싶다.고등학교시절에 야산과 과수원으로 가득차 있었던 강남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우리집은 그때 살기가 조금 넉넉하였는지 영동지구 10단지 지금은 청담동이라 불리는 곳에 시영주택이라는 주택단지에 대지90평에 건평 34평의 주택을 매입하여 살게 되었다.

 

한남동에서 제3한강교를 건너 신사동을 경유 학동까지 연결되어진 시내버스를 타거나 말죽거리가 종점인 시내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그 당시 내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는 경기고등학교가 건설중이였으며 강남지역 곳곳을 마구 파헤치며 택지를 개발하고 있는 수많은 장비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겨울이면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려 시내버스가 신사동에서 더이상 운행을 하지 못하였기에 그 먼거리를 눈길에 미끄러지며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봉원사로 들어가는 길목엔 하늘높은줄 모르고 솟아있었던 아름답기 그지 없는 소나무도 그곳엔 많이 있었다. 그렇듯 채 매매되지 않은 과수원에선 배꽃이 향기롭게 피어있었으며 과수원 근처 작은 나무가지에서는 이름모를 새들이 시도 때도 없이 울었다.70년대의 강남은 지금의 강남의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을 가지고 있었던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결혼을 이유로 분가하여 르네상스 라마다 호텔의 자리가 을씨년 스러운 공터로 남아있었고 김영삼대통령이 다니던 충현교회가 막 건설되어 완공될때 까지 영동우체국 뒤의 이층으로 지어진 단독주택에 사는것을 마지막으로 내 화려했던 강남시대를 마감했다.

 

강북의 사람으로 살면서 나는 한번도 강남의 사람들을 부러워 해본 적이 없었다. 그 곳에서 내 청소년 시절과 젊은 시절동안에 잔뼈가 굵은 나이기에 제8학군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난 강북의 작은마을 성산동을 떠나지 않고 그곳의 아름다운 사람들과 어울려 살았다.그 작고 아름다웠던 마을에도 지금은 그림같은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고 상암지역의 개발로 인하여 문화적 혜택도 많이 받고 있을뿐만 아니라 하늘공원의 자전거도로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멋지게 타는 날렵함도 뽐내며 그렇게 알콩 달콩 살고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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