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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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湖四時歌 / 孟思誠 - 孟氏杏壇
강호가(江湖歌) 또는 사시한정가(四時閒情歌) 라고 불리우는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조선초기 맹사성(孟思誠)이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강호에 묻힌 자신의 생활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자연의 변화와 결부시켜 각 한 수씩 4수로 읊은 연시조다.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으로, 계절에 따라 한 수씩을 노래했다. 초장은 모두 ‘강호( 江湖) ’라는 말로 시작되고, 종장은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라는 의미의 ‘역군은(亦君恩)이샷다’로 끝난다. 江湖四時歌 / 孟思誠 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興이 절로 난다.탁료 계변에 錦鱗魚가 안쥐로다.이 몸이 閒暇해옴도 亦君恩이샷다. 江湖에 녀름이 드니 草堂에 일이 업다.有信한 江波난 보내나니 바람이로다.이 몸이 서날해옴도 亦君恩이샷다. 江湖(강호)에 ..
2024.05.01 -
바우덕이 - 청룡마을 - 안성시 - 경기도
바우덕이찬가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
2024.04.29 -
아이의 노래(Lied vom kindsein) / Peter Handke' - 베르린의 하늘(Der Himmel über Berlin)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라는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2024.04.11 -
홀로서기 - 바람아래해변 - 태안군 - 충남
홀로서기 / 서정윤 기다림은 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 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 바람이 불면 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 어디엔가 있을 나에 한쪽을 위해 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 태어나면서 이미 누군가가 정해졌다면, 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 홀로 선다는 건 가슴을 치며 우는 것보다 더 어렵지만 자신을 옭아맨 동아줄 그 아득한 끝에서 대롱이며 그래도 멀리, 멀리 하늘을 우러르는 이 작은 가슴 누군가를 열심히 갈구해도 아무도 나의 가슴을 채워줄 수 없고 결국은 홀로 살아간다는 걸 한겨울의 눈발처럼 만났을 때 나는 또다시 쓰러져 있었다. 3 지우고 싶다. 이 표정 없는 얼굴을 버리고 싶다 아무도 나의 아픔을 돌아보지 않고 오히려 수렁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 내 손에 아무..
2024.01.06 -
느티나무(사랑나무) - 가림성 - 부여
The Legend Of The Zelkova Tree / kwoonlee There's a big zelkova tree on the hill,Long ago, in my child days at home town.Under it my grandmother waited me on the hillWhenever I visited her house in home town. The old men played the chess, in summer,On the low wooden bench, under the tree.The children made the snow men, in winter And a shaman'd performed the rite at the tree. One day the tree was..
2023.10.09 -
동행 / 이정하
동행 / 이정하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그것처럼 우리 삶에 따스한 것은 없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혼자였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언제나 혼자였다 기대고 싶을 때 그의 어깨는 비어 있지 않았으며 잡아 줄 손이 절실히 필요했을 때 그는 저만치서 다른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래, 산다는 건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다 비틀거리고 더듬거리더라도 혼자서 걸어가야하는 길임을, 들어선 이상 멈출 수도 가지않을 수도 없는 그 외길 같이 걸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 아마, 그것처럼 내 삶에 절실한 것은 없다
2023.10.09 -
늙어가는 길 / 윤석구
늙어가는 길 / 윤석구 처음 가는 길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길입니다 무엇 하나 처음 아닌 길은 없었지만 늙어 가는 이 길은 몸과 마음도 같지 않고 방향 감각도 매우 서툴기만 합니다 가면서도 이 길이 맞는지 어리둥절할 때가 많습니다 때론 두렵고 불안한 마음에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곤 합니다 시리도록 외로울 때도 있고 아리도록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 어릴적 처음 길은 호기심과 희망이 있었고 젊어서의 처음 길은 설렘으로 무서울 게 없었는데 처음 늙어 가는 이 길은 너무 어렵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지팡이가 절실하고 애틋한 친구가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래도 가다 보면 혹시나 가슴 뛰는 일이 없을까 하여 노욕인 줄 알면서도 두리번 두리번 찾아 봅니다 앞길이 뒷길보다 짧다는 걸 알기에 한 발 한 발 더디게 걸으..
2023.10.08 -
땅끝 / 나희덕
땅끝 / 나희덕 산 너머 고운 노을을 보려고 그네를 힘차게 차고 올라 발을 굴렀지. 노을은 끝내 어둠에게 잡아먹혔지. 나를 태우고 날아가던 그넷줄이 오랫동안 삐걱삐걱 떨고 있었어. 어릴 때는 나비를 좇듯 아름다움에 취해 땅끝을 찾아갔지. 그건 아마도 끝이 아니었을지도 몰라. 그러나 살면서 몇 번은 땅끝에 서게도 되지. 파도가 끊임없이 땅을 먹어 들어오는 막바지에서 이렇게 뒷걸음질치면서 말야. 살기 위해서는 이제 뒷걸음질만이 허락된 것이라고. 파도가 아가리를 쳐들고 달려드는 곳 찾아 나선 것도 아니었지만. 끝내 발 디디며 서 있는 땅의 끝,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위태로움 속에 아름다움이 스며 있다는 것이 땅끝은 늘 젖어 있다는 것이 그걸 보려고 또 몇 번은 여기에 이르리라는 것이.
2023.10.01 -
균 열(龜裂) / 김민부
균 열(龜裂) / 김민부 달이 오르면 배가 곯아 배 곯은 바위는 말이 없어 할 일 없이 꽃 같은 거 처녀 같은 거 남 몰래 제 어깨에다 새기고들 있었다 징역 사는 사람들의 눈 먼 사투리는 밤의 소용돌이 속에 파묻힌 푸른 달빛 없는 것, 그 어둠 밑에서 흘러가는 물 소리 바람 불어……, 아무렇게나 그려진 그것의 의미는 저승인가 깊고 깊은 바위 속의 울음인가 더구나 내 죽은 후에 이 세상에 남겨질 말씀쯤인가
2023.10.01 -
주유소 / 윤성택
주유소 /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 오르는 숫자들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끝내 부치지 못했던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함부로 불질렀던 청춘은 라이터 없이도 불안했거나 불온했으므로 돌이켜보면 사랑도 휘발성이었던 것, 그래서 오색의 만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먼길을 떠나야하는 항공우편봉투 네 귀퉁이처럼 쓸쓸하다초행길을 가다가 주유소가 나타나기를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여전히그리운 것들은 모든 우회로에 있다
2023.09.30 -
길상사(吉祥寺) - 성북동 - 서울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23.09.29 -
가평의 겨울 - 가평군 - 경기도
그해 겨울 / 유희경 그해 겨울 오랜 연애를 마감하였고 파란 사파리 점퍼를 사서 계절이 다 닳도록 입었다 즐겨 들었던 노래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몇 갑의 담배를 피웠고 끊을 수가 없었다 떨지 않았다 그냥 아무렇지도 않았던 그해 겨울, 많은 사람이 죽었다 이따금 전광판을 바라봤지만 나는 소식이 되지 않았다 이따금 生은 괜찮았다 이따금 새가 날았다 이따금 아는 사람을 만났고 명함을 주고받았다 어디든 나는 나이를 둘러매고 갔다 췌장을 앓았다 받아온 약은 먹지 않았다 그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들은 멈추었다 겨울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쓰지 못했다 다 필요 없어 보이기만 했으니, 만져보았던 글자들이 몸을 떨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늙은 개들은 언덕을 따라 올라가고 아이들은 여전히 달리..
2023.09.29 -
나무 - 선운산생태숲 - 고창군 - 전북
푸른나무 / 김용택 막 잎 피어나는 푸른 나무 아래 지나면왜 이렇게 그대가 보고싶고그리운지 작은 실가지에 바람이라도 불면왜 이렇게 나는그대에게 닿고 싶은 마음이간절해지는지 생각해서 돌아서면다시 생각나고암만 그대 떠올려도목이 마르는 이 푸르러지는 나무 아래.
2023.09.29 -
우물 - 선운산생태숲 - 고창군 - 전북
우물 / 이정하 깊고 오래된 우물일수록컴컴하고 어둡다.그 우물 속에서,어둠만 길어질 것 같던 거기서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올려질 줄이야. 이토록 맑은 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끊임없이 뒤채이고 있었다는 것이다.남들이 보지 않아도 속으로열심히 물을 갈아엎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고여 있는 것 같아도 사실우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어쩌다 한 번뿐일지라도 우물은늘 두레박을 맞이할 준비가되어 있는 것이다.
2023.09.29 -
그네 - 내포보부상촌 - 예산군 - 충남
]오월이라 단옷날은 천중가절이 아니냐수양청청 버들숲에 꾀꼬리는 노래하네후여넝츨 버들가지 저가지를 툭툭차자후여넝츨 버들가지 청실홍실 그네매고임과나와 올려뛰니 떨어질까 염려로다한번굴러 앞이솟고, 두번굴러 뒤가솟아허공중층 높이뜨니 청산녹수 얼른얼른어찌보면 훨씬멀고 얼른보면 가까운듯올라갔다 내려온양 신선선녀 하강일세난초같은 고운머리 금박댕기 너울너울외씨같은 두발길로 반공중에 노니누나요문갑사 다홍치마 자락들어 꽃을매고초록적삼 반호장에 자색고름도 너울너울
2023.09.29 -
산책 - 동호해변 - 고창군 - 전북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 / 신현림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나무를 보면 나무를 닮고모두 자신이 바라보는 걸 닮아간다 멀어져서 아득하고 아름다운 너는흰 셔츠처럼 펄럭이지바람에 펄럭이는 것들을 보면가슴이 아파서내 눈 속의 새들이 아우성친다 너도 나를 그리워할까분홍빛 부드러운 네 손이 다가와돌려가는 추억의 영사기이토록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구나사라진 시간 사라진 사람 바다를 보면 바다를 닮고해를 보면 해를 닮고너를 보면 쓸쓸한 바다를 닮는다
2023.09.24 -
꽃무릇 - 선운사 - 고창군 - 전북
선운사에서 / 최 영 미 꽃이피는 건 힘들어도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그대가 처음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잊는 것 또한 그렇게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잊는 건 한참이더군영영 한참이더군
2023.09.24 -
도솔천 - 선운사 - 고창군 - 전북
선운사 동백꽃 / 김용택 여자에게 버림받고살얼음 낀 선운사 도랑물을맨발로 건너며발이 아리는 시린 물에이 악물고 그까짓 사랑 때문에그까짓 여자 때문에 다시는 울지 말자다시는 울지 말자 눈물을감추다가동백꽃 붉게 터지는선운사 뒤안에 가서엉엉 울었다
2023.09.24 -
연인 - 파도리해변 - 태안군 - 충남
연인 / 최영미 나의 고독이너의 고독과 만나 나의 슬픔이너의 오래된 쓸쓸함과 눈이 맞아 나의 자유와너의 자유가 손을 잡고 나의 저녁이 너의 저녁과 합해서너의 욕망이 나의 밤을 뒤흔들고 뜨거움이 차가움을 밀어내고나란히 누운, 우리는같이 있으면 잠을 못 자.곁에 없으면 잠이 안 와.
2023.09.20 -
너는 누구냐 - 채석포항 - 태안군 - 충남
새 / 천상병 외롭게 살다 외롭게 죽을 내 영혼의 빈터에 새 날이 와, 새가 울고 꽃이 필 때는, 내가 죽는 날 그 다음 날. 산다는 것과 아름다운 것과 사랑한다는 것과의 노래가 한창인 때에 나는 도랑과 나무가지에 앉은한 마리 새.정감(情感)에 가득찬 계절슬픔과 기쁨의 주일(週日)알고 모르고 잊고 하는 사이에 새여 너는낡은 목청을 뽑아라 살아서좋은 일도 있었다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그렇게 우는 한 마리 새
2023.09.20 -
만선깃발 - 채석포항 - 태안군 - 충남
晩潮初長沒汀洲만조초장몰정주島嶼微茫霧未收도서미망무미수白雨滿船歸棹急백우만선귀도급數村門掩豆花秋수촌문엄두화추 저녁 만조 밀려들어 모래사장은 잠겼는데섬들은 안개 속에 숨어 희미하네소낙비가 배에 가득해 노 젓기 급하고마을마다 문 닫은 콩 꽃이 핀 가을이네
2023.09.20 -
새 - 채석포 - 태안군 - 충남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 정호승 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잠이 든 채로 그대로 눈을 맞기 위하여잠이 들었다가도 별들을 바라보기 위하여외롭게 떨어지는 별똥별들을 위하여그 별똥별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어린 나뭇가지들을 위하여새들은 지붕을 짓지 않는다 가끔은 외로운 낮달도 쉬어가게 하고가끔은 민들레 홀씨도 쉬어가게 하고가끔은 인간을 위해 우시는 하느님의 눈물도 받아둔누구든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새들의 집을 한번 들여다보라 간밤에 떨어진 별똥별들이 고단하게 코를 골며 자고 있다간밤에 흘리신 하느님의 눈물이새들의 깃털에 고요히 이슬처럼 맺혀 있다
2023.09.20 -
빈배 - 정산포 - 태안군 - 충남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내 손가락들 사이로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세계는 빠져나갔다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나 돌아갑니다
2023.09.20 -
빈배 - 정산포 - 태안군 - 충남
빈 배처럼 텅 비어 / 최승자 내 손가락들 사이로내 의식의 층층들 사이로세계는 빠져나갔다그러고도 어언 수천 년 빈 배처럼 텅 비어나 돌아갑니다
2023.09.20 -
섬 - 통개항 - 태안군 - 충남
무인도 / 신경림 너는 때로 사람들 땀 냄새가 그리운가 보다밤마다 힘겹게 바다를 헤엄쳐 건너집집에 별이 달리는 포구로 오는 걸 보면질척거리는 어시장을 들여다도 보고떠들썩한 골목을 기웃대는 네 걸음이절로 가볍고 즐거운 춤이 되는구나 누가 모르겠느냐 세상에 아름다운 게나무와 꽃과 풀만이 아니라는 걸악다구니엔 짐짓 눈살을 찌푸리다가놀이판엔 콧노래로 끼여들 터이지만 보아라 탐조등 불빛에 놀라 돌아서는네 빈 가슴을 와 채우는 새파란 달빛을슬퍼하지 말라 어둠이 걷히기 전에 돌아가안개로 덮어야 하는 네 갇힌 삶을 곳곳에서 부딪히고 막히는 무거운 발길을깃과 털 속에 새와 짐승을 기르면서가슴속에 큰 뭍 하나를 묻고 살아가는너 나의 서럽고 아름다운 무인도여
2023.09.20 -
섬 - 통개항 - 태안군 - 충남
섬 / 곽재구 섬이물위에 떠 있는 것은함께 지낸 이가 물 안에 누워 있기 때문이다 북국으로 날아가는 새들이함께 가지 못하는 살붙이 형제들을그리워하며꺼억꺽 목놓아 울둥지 하나를 놓아주기 위함이다 달이 환한 밤자신의 다리뼈로 만든 피리를 불며 오는 사내에게당신이 찾는 뼈들이여기 누워 있어요이정표가 되어주기 위함이다 별이 하늘에서 반짝이는 것은지상에 얼마나 많은 서러운 섬이홀로 고요히 노래를 부르는지 알기 때문이다 육신은 때로얼마나 가슴 저미는 환영인지스스로의 눈물 안에 소금을 뿌리기 때문이다
2023.09.20 -
섬 - 통개항 - 태안군 - 충남
섬 /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그 섬에 가고 싶다
2023.09.20 -
섬 - 원산도 - 보령시 - 충남
검은 섬 / 이성복 방파제 끝에 검은 섬이 떠 있고담배꽁초를 버리면 저 아래, 아주 낮은곳에서 불 꺼지는 소리 들렸다방파제 따라 섬에 들어가면 아직 운명을바꿀 수 있을까, 남은 우리의 눈빛을빨아들이는 검은 섬저의 발치에 우리를놀게 하면서도 다만 근심으로 떠 있는 검은 섬, 거기에도 붉은 유도화 비명 같은 꽃을내지르고 두근거리는 가슴처럼초록 파도 밤새 설레이겠지만, 콘크리트 방파제 끝에 검은 섬이 있고,우리는 방파제 중간에서 돌아 나온다다만 피할 수 없이 거기 떠 있는 운명, 볼록렌즈의 보이지 않는 초점처럼검은 섬이 있어서 밤새 우리 몸이타 들어가도 새벽빛 비치면 검은 섬은 없다
2023.09.15 -
너의 빈자리 - 방포해변 - 태안군 - 충남
빈 의자/황경신 나는 여태 이렇게 비어 있고너는 여태 그렇게 비어 있어그러한 대수롭지 않은 운명으로 만나대단치 않은 것처럼 곁을 훔치다가모든 것이 채워지는 인생은 시시하다고 중얼거리며밀쳐내는 이유를 만들기도 하다가붙잡을 것 없는 텅빈 밤이면너의 텅빈 마음을 파고드는 꿈을 꾸기도 하다가아직 이렇게 비어 있는 나는아직 그렇게 비어 있는 너 때문인지도 모르니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한다조금 더 비워두기로 한다
2023.09.15 -
홀로서기 - 밧개해변 - 태안군 - 충남
홀로서기 / 서정윤 기다림은만남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도 좋다가슴이 아프면 아픈 채로바람이 불면고개를 높이 쳐들면서, 날리는 아득한 미소어디엔가 있을나에 한쪽을 위해헤매던 숱한 방황의 날들태어나면서 이미누군가가 정해졌다면,이제는 그를 만나고 싶다.
2023.09.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