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75)
-
가을에 은행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 용혜원
가을에 은행나무 숲길을 걷노라면 / 용혜원 가을에 은행나무 숲길을 걷노라면내 마음까지노랗게 물들고 말아나도 가을이 된다 가을이 깊어가면 갈수록사랑을 하고 싶다 그 호수에 풍덩 빠져들고만 싶다 이 가을엔 차라리나 스스로가 노랗게 물드는은행잎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너로 인해 이렇게 가슴이 멍울 지는아픔을 느끼지는 않았을 것이다
2024.11.27 -
가을 상처 / 문정희
가을 상처 / 문정희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건너며 저 아래강이 흐른다고 하지만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다리 아랜 언제나 강이 있었다 너를 사랑해! 한여름 폭양 아래 핀붉은 꽃들처럼 서로 피눈물 흘렸는데그 사랑 흘러서 어디로 갔을까 사랑은 내 심장 속에 있다가슬며시 사라졌다 너와 나 사이에 놓인 다리에는지금 아무 것도 없다 상처가 쑤시어 약을 발라주려고 했지만내 상처에 맞는 약 또한 세상에는 없었다 나의 몸은 가을날 범종처럼 무르익어바람이 조금만 두드려도 은은한 슬픔을 울었다 빙초산을 뿌리며 가을이 달려들었다다리 아랜 여전히 강이 있었다
2024.11.27 -
단풍드는 날 / 도종환
단풍드는날 / 도종환 버려야 할 것이무엇인지 아는 순간부터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제 몸의 전부였던 것버리기로 결심하면서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제가 키워 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가장 황홀한 빛깔로우리도 물이 드는 날
2024.11.26 -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내가 사랑하는 사람 / 정호승 나는 그늘이 없는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나뭇잎 사이로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다른 사람의 눈물을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2024.11.17 -
우물 / 이정하
우물 / 이정하 깊고 오래된 우물일수록컴컴하고 어둡다.그 우물 속에서,어둠만 길어질 것 같던 거기서맑고 깨끗한 물이 가득 올려질 줄이야. 이토록 맑은 물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끊임없이 뒤채이고 있었다는 것이다.남들이 보지 않아도 속으로열심히 물을 갈아엎고 있었다는 것이다. 가만히 고여 있는 것 같아도 사실우물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어쩌다 한 번뿐일지라도 우물은늘 두레박을 맞이할 준비가되어 있는 것이다.
2024.11.16 -
한잎의 여자 / 오규원
한잎의 여자 / 오규원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그 한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그 한잎의 솜털,그 한 잎의 맑음,그 한 잎의 영혼,그 한 잎의 눈,그리고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여자 아닌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눈물 같은 여자,슬픔 같은 여자,병신 같은 여자,시집(詩集)같은 여자, 그러나 누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그래서 불행한 여자.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물푸레나무 그림자같은 슬픈 여자
2024.11.08 -
이정하의 '돌아가고 싶은날의 풍경' 중에서
이상한 일입니다.사랑을 나눠 보면 슬픔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데도사람들은 사랑을 하지 못해 안달입니다.약간의 기쁨,그 불확실한 기쁨을 위해 사람들은자신의 인생 전체가 슬픔에 젖어 산다 해도능히 그것을 감수하거든요.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 어이없는 일이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고,앞으로도 끊임없이 벌어질 것이니.내게도 그런때가 있었습니다.구석진 골방에 쳐박혀 죄없는 담배만 죽이던,긴 밤 내내 전해 주지도 못할 사연들만 끼적이다날이 뿌옇게 새던 그 시절,그때 사랑은 결코 환희가 아니었습니다.밝으면 밝을수록 비친 이면에깊숙이 도사리고 있던 어둠이라고나 할까요.당연히달콤하고 황홀한 것이라고만 상상하던 나에게사랑은너무나 혹독한 시련으로 다가왔던 것이지요.
2024.11.08 -
패러독스(역설) / 김용호
패러독스(역설) / 김용호 *그리하여 내 사랑은 영원히 유폐(幽閉)의 운명을 등에 지고 뻗을 곳 없는 내 정열은 우울의 화석(化石)이 되고 말았다.* 극과 극은그렇게도 멀었고극과 극은그렇게도 가까웠다 언어의 파라독스를하나의 진리로서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을나는 불행으로 생각지 않는다 회오리바람이 뜨거운 정열을 몰아그를 껴안을 기회를 갖다 주었어도이성의 차디 찬 단념의 칼날은끝내 그이의 행복을 뺏지 않았다 그이의 행복이란모든 것에 가난한내 앞을 떠나는 것이었다나는 최후의 이 자리에서뒤끓는 심장의 고동을땅 위에 꽂았다 새파랗게 질린내 입술은잠자리 날개처럼 떨렸으나다음의 말은뼈아프게 똑똑히 하였다나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2024.11.08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 백석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2024.11.08 -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 / 정호승 풀잎에도 상처가 있다꽃잎에도 상처가 있다너와 함께 걸었던 들길을 걸으면들길에 앉아 저녁놀을 바라보면상처 많은 풀잎들이 손을 흔든다상처 많은 꽃잎들이가장 향기롭다
2024.11.07 -
동행 / 양광모
동행 / 양광모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갈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따뜻한 일인가 팔짱을 끼고 함께 걸어갈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바람은 불고꽃은 지고지구는 빠르게 도는데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걸어갈사람이 있다는 건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고마웠노라 행복했노라 이 세상의 일 마치고 떠나는 날작별의 인사 뜨겁게 나눌 사람 있다면그의 인생은 또 얼마나 눈부신 동행인가
2024.11.07 -
11월 / 나태주
11월/ 나태주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 버렸고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피를 문 입술로 이쪽을 보고 있을 것만 같습니다. 낮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더욱 그대를 사랑해야겠습니다.
2024.11.03 -
모래시계 / 정호승
모래시계 / 정호승 다시 모래시계를 뒤집어놓을 수 있다고기다리지 마라누구의 모래시계든 오직 단 한번만 뒤집어놓을 수 있다 차라리 무릎을 꿇고시간의 길이 수없이 달리는 밤하늘을 우러러보라지금은 마지막 남은 모래 한 알모래시계의 좁은 구멍 아래로 막 떨어지려는 순간이다 모래는 모래가 되기까지의 모든 시간을 성실히 나누어주고낙타가 기다리는 사막으로 간다 그치지 마라모래시계 속에서 불어오는 거대한 사막의 모래폭풍아모래 한 알 한 알마다 어머니의 미소가 어릴 때까지나는 지금 낙타를 타고 모래시계 속을 걸어간다
2024.10.21 -
가을꽃 /정호승
가을꽃 / 정호승 이제는 지는 꽃이 아름답구나언제나 너는 오지 않고 가고눈물도 없는 강가에 서면이제는 지는 꽃도 눈부시구나 진리에 굶주린 사내 하나 빈 소주병을 들고 서 있던 거리에도종소리처럼 낙엽은 떨어지고黃菊도 꽃을 떨고 뿌리를 내리나니 그동안 나를 이긴 것은 사랑이었다고눈물이 아니라 사랑이었다고물 깊은 밤 차가운 땅에서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꽃이여
2024.10.19 -
호박꽃도 꽃이다 / 박의용
호박꽃도 꽃이다 / 박의용 아무도 거들 떠 보지도 않았지만 꼬옥 입다물고 소중한 사랑을 품었더니 그 열린 입속에 하늘의 별이 있었네. 소중한 것은 알아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소중함을 간직하는 것 그 안으로 품은 뜻이 저 하늘 별처럼 반짝이는 것. 맑은 미소 지으며 바람을 휘감아 안고 벌과 나비를 반기다 보면 어느덧 잉태되는 둥그런 생명. 구불구불 넝쿨따라 땅의 정기 배달받아 통통하게 자라나니 어느듯 엄마되어 수 없이 지샌 밤하늘 별처럼 새생명을 품었어라. 생명은 거룩하게 윤회(輪回) 되는 것 그 자체로 빛나는 꽃 호박꽃도 꽃이다.
2024.10.19 -
곁을 지킨다는 것은 / 신승근
곁을 지킨다는 것은 / 신승근 이만큼, 이 이만큼 떨어져서당신을 본다 그대와 나 사이아스라한 거리를 만들고 싶어서다 그 거리만큼 당신은나에게 다시 기다림이다 가까이 있어도 먼 그대라면그리움은 또 얼마나 클까 곁을 지킨다는 것은 이렇듯설레는 가슴으로 사는 일이다
2024.10.16 -
그러므로 사랑은 / 신승근
그러므로 사랑은 / 신승근 사랑은 나무를 보는 게 아니라 나무와 나무 사이를 보는 것이다 꽃만 보는 게 아니라 꽃이 담긴 허공을 함께 보는 것이다 눈물만 보는 게 아니라눈물 너머 더 깊은 곳에 담긴슬픔까지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나무와 나무 그 사이에 있고꽃이 담긴 허공이 있고눈물을 지나 슬품에 가닿은 가슴 저린 그리움 그 너머에 있다
2024.10.16 -
거리 / 박인환
거리/ 박인환나의 시간에 스코올과 같은 슬픔이 있다붉은 지붕 밑으로 향수가 광선을 따라가고한없이 아름다운 계절이운하의 물결에 씻겨 갔다아무 말도 하지말고지나간 날의 동화를 운율에 맞춰거리에 화액을 뿌리자따뜻한 풀잎은 젊은 너의 탄력같이밤을 지구 밖으로 끌고 간다지금 그곳에는 코코아의 시장이 있고과실처럼 기억만을 아는 너의 음향이 들린다소년들은 뒷골목을 지나 교회에 몸을 감춘다아세틸렌 냄새는 내가 가는 곳마다음영같이 따른다거리는 매일 맥박을 닮아 갔다베링 해안 같은 나의 마을이떨어지는 꽃을 그리워 한다황혼처럼 장식한 여인들은 언덕을 지나바다로 가는 거리를 순백한 식장으로 만든다전정의 수 목같은 나의 가슴은베고니아를 끼어안고 기류 속을 나온다망원경으로 보던 천만의 미소를 회색 외투에싸아얼은 크리스마..
2024.10.04 -
A Wooden Horse and a Lady / Park Inhwan
A Wooden Horse and a Lady / Park Inhwan Having a drinkWe are talking of Virginia Woolf’s lifeAnd the hem of a lady’s dress who has gone riding on a wooden horse.It has disappeared into the autumn tinkling just its bells,Leaving its owner behind A star falls from a bottle.The heart-broken star is shattered lightly against my heart.When the girl I kept in touch with for a whileGrows up by the gras..
2024.10.04 -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세월이 가면 /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비가 올 때도나는저 유리창 밖 가로등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그 벤치 위에나뭇잎은 떨어지고나뭇잎은 흙이 되고나뭇잎에 덮여서우리들 사랑이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의 눈동자 입술은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명동에 있던 선술집인 ‘경상도집’ 이란 술집에서 시상이 떠오른 박인환이 즉석에서 시를 짓고, 옆에 있던 작곡가 이진섭이 곡을 쓰고, 임만섭이 노래를 불러 탄생한 ‘세월이 가면’의 탄생배경은 명동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일화다. 살아생전 박인환은 시인 이상(李箱)을 좋아했다. 술은 조니 워커 위스키와 담배는 카멜을 선호했다..
2024.10.04 -
采蓮曲 / 許 蘭雪軒
采蓮曲(채련곡) / 許 蘭雪軒(허 난설헌) 秋淨長湖碧玉流(추정장호벽옥류) 荷花深處繫蘭舟(하화심처계란주) 逢郞隔水投蓮子(봉랑격수투련자) 遙被人知半日羞(요피인지반일수) 가을날 깨끗한 긴 호수는 푸른 옥이 흐르는 듯연꽃 수북한 곳에 작은 배를 매어두었네임을 만나려고 물 너머로 연밥을 던졌다가멀리서 남에게 들켜 반나절 동안 부끄러웠네
2024.10.01 -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자작나무 / 로버트 프로스트 꼿꼿하고 검푸른 나무줄기 사이로 자작나무가좌우로 휘어져 있는 것을 보면나는 어떤 아이가 그걸 흔들고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진다 그러나 흔들어서는눈보라가 그렇게 하듯 나무들을 휘어져 있게는 못한다 비가 온 뒤 개인 겨울 날 아침나뭇가지에 얼음이 잔뜩 쌓여있는 걸 본 일이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불면 흔들려 딸그락거리고그 얼음 에나멜이 갈라지고 금이 가면서오색찬란하게 빛난다 어느새 따뜻한 햇빛은 그것들을 녹여굳어진 눈 위에 수정 비늘처럼 쏟아져 내리게 한다 그 부서진 유리더미를 쓸어 치운다면당신은 하늘 속 천정이 허물어져 버렸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른다 나무들은 얼음 무게에 못 이겨말라붙은 고사리에 끝이 닿도록 휘어지지만부러지지는 않을 것 같다. 비록 한 번 휜 채 오래 있으면다시 꼿..
2024.09.17 -
Ich, der Überlebende / 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살아남은 자의 슬픔 / 베르톨트 브레히트 물론 나는 알고 있다오직 운이 좋았던 덕택에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삼아 남았다그러자 지난 밤 꿈 속에서이 친구들이 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강한 자는 살아남는다"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Ich, der Überlebende / Eugen Berthold Friedrich Brecht Ich weiß natürlich: einzig durch GlückHabe ich so viele Freunde überlebt. Aber heute nacht im TraumHörte ich diese Freunde von mir sagen: "Die Stärkeren überleben."Und ich haßte mich.
2024.06.02 -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 백석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이 흰 바람벽에희미한 십오촉十五燭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이 흰 바람벽에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놓고 저녁을 먹는다벌서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이 힌..
2024.06.02 -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가난한 사랑노래 / 신경림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너와 헤어져 돌아오는눈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가난하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겠는가두 점을 치는 소리방범대원의 호각 소리 메밀묵 사려 소리에눈을 뜨면 멀리 육중한 기계 굴러가는 소리. 가난하다고 해서 그리움을 버렸겠는가어머님 보고 싶소 수없이 뇌어 보지만,집 뒤 감나무에서 까치밥으로 하나 남았을새빨간 감 바람 소리도 그려 보지만. 가난하다고 해서 사랑을 모르겠는가내 볼에 와 닿던 네 입술의 뜨거움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던 네 숨결돌아서는 내 등 뒤에 터지던 네 울음. 가난하다고 해서 왜 모르겠는가,가난하기 때문에 이것들을이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2024.05.20 -
江湖四時歌 / 孟思誠 - 孟氏杏壇
강호가(江湖歌) 또는 사시한정가(四時閒情歌) 라고 불리우는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는 조선초기 맹사성(孟思誠)이 만년에 벼슬을 내놓고 강호에 묻힌 자신의 생활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 자연의 변화와 결부시켜 각 한 수씩 4수로 읊은 연시조다. 강호에서 자연을 즐기며 임금의 은혜를 생각하는 내용으로, 계절에 따라 한 수씩을 노래했다. 초장은 모두 ‘강호( 江湖) ’라는 말로 시작되고, 종장은 임금님의 은혜이시도다 라는 의미의 ‘역군은(亦君恩)이샷다’로 끝난다. 江湖四時歌 / 孟思誠 江湖에 봄이 드니 미친 興이 절로 난다.탁료 계변에 錦鱗魚가 안쥐로다.이 몸이 閒暇해옴도 亦君恩이샷다. 江湖에 녀름이 드니 草堂에 일이 업다.有信한 江波난 보내나니 바람이로다.이 몸이 서날해옴도 亦君恩이샷다. 江湖(강호)에 ..
2024.05.01 -
바우덕이 - 청룡마을 - 안성시 - 경기도
바우덕이찬가 안성 청룡 바우덕이 소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 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을 날리며 떠나를 가네
2024.04.29 -
같이 있다는 건 / 비움
같이 있다는 건 / 비움 너랑 밥을 먹는다니 벗은 발가락 사이에나의 얇은 발가락을 끼워 우린아무것도 없는데그냥 좋았다 배달된 육개장빨간국물너와 먹으니 맛있다 얼굴에 국물 자국 묻혀가며킥킥거리다 우린 뭘 해도 좋았고아무것도 안해도 좋았다
2024.04.16 -
Lied vom kindsein) / Peter Handke' - Der Himmel über Berlin
아이가 아이였을 때팔을 휘저으며 다녔다시냇물은 하천이 되고하천은 강이 되고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라는 걸 모르고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아이가 아이였을 때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왜 난 여기에 있고저기에는 없을까?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우주의 끝은 어디일까?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만 나일 뿐..
2024.04.11 -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첫눈 오는 날 / 곽재구 사랑하는마음이 깊어지면하늘의 별을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마음이 깊어지면새들이 꾸는 겨울 꿈같은 건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당산 전철역 오르는 계단 위에 서서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펴 들고허공 속으로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마음이 깊어지면다닥다닥 뒤엉킨이웃들의 슬픔 새로순금 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마음이 깊어지면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2024.04.02